시읽는기쁨

이웃 / 이정록

샌. 2007. 2. 20. 13:59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두부장수는 종을 흔들지 마시고

행상트럭은 앰프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크게 써서 학교 담장에 붙이는 소사아저씨 뒤통수에다가

담장 옆에 사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날린다

공일날 운동장 한번 빌려준 적 있어

삼백육십오일 스물네 시간 울어대는

학교 종 한번 꺼달란 적 있어

학교 옆에 사는 사람은 두부도 먹지 말란 거여

꽁치며 갈치며 비린 것 한번 맛볼라치면

버스 타고 장에까지 갔다오란 거여

차비는 학교에서 내줄 거여. 도대체

생명이 뭔지나 알고 분필 잡는 거여

호박넝쿨 몇개 얹었더니 애들 퇴학시키듯 다 잘라버린 것들이

말 못하는 담벼락 가슴팍에 못질까지 하는 거여

애들이 뭘 보고 배울 거여. 이웃이 뭔지

이따위로 가르쳐도 된다는 거여

 

- 이웃 / 이정록

 

교육문제에 대해 누구나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든 가정이 교육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국민들은 모두 교육의 준전문가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논쟁이 표피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내 자식 공부 잘 시키고 좋은 대학 보내는 관점에서만 교육을 바라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교육이란 무엇인지, 지금의 학교교육은 과연 제대로 된 인간을 길러낼 수 있는지, 제도교육 시스템이 사회 구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학부모의 이기적인 행위가 얼마나 교육을 망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과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은 결코 사회 시스템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탐욕스런 인간들이 모인 집단에서 탐욕의 교육은 불가피하다. 탐욕의 교사들이 교육계의 주류를 이루고, 탐욕의 학부모들이 강력히 그들을 뒷받침한다. 그런 학교에서 아이들 또한 탐욕의 인간들로 길들여진다. 자정이 넘도록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산가족이 되면서까지 해외로 나가 공부시켜야 하는 현실이 그것을 대변해 준다. 그런 과정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그들의 인성은 피폐해지고, 획일화되고 무기력한 대중으로 되도록 훈련 받게 된다.

 

고전적 의미의 교육은 이미 죽었다. 교육이란 간판을 내걸었지만 학교에서고 어디서고 참교육을 찾아볼 수는 없다. 현실의 학교는 자본주의의 주구를 기르는 살벌한 병영일 뿐이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이런 현실 인식에서 교육 개혁은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세상이 변하지 않고 학교가 변할 수는 없다. 그러자면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어쩔 수 없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눈을 뜬 개개인이 점점 많아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큰 합창 소리로 들려야 한다.

 

"이따위로 가르쳐도 된다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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