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조용한 이웃 / 황인숙

샌. 2007. 2. 15. 16:45

부엌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본다

높다랗게 난 작은 창 너머에

나무들이 살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까치집 세 개와 굴뚝 하나는

그들의 살림일까?

꽁지를 까닥거리는 까치 두 마리는?

그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지금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이다

그리고 봄기운을 한두 방울 떨군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삼키는 것이다

 

- 조용한 이웃 / 황인숙

 

나무보다 더 아름다운 시는 없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시인 또한 부엌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를 통해 성자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들 식탁에 오른 것은 햇살과 바람이다. 반면에 시인은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며 인간 식탁의 탐욕과 살육을 새삼스레 느꼈을지 모른다.

 

어제 저녁 전체 회식 자리에는 개고기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앞에 앉은 사람들의 번들거리는 얼굴들이 싫다고, 한 사람은 아예 참석을 하지 않았다. 넓은 홀은 곧 술 취해 떠드는 소리와 시끄러운 소음들로 가득해 졌다. 귀가 먹먹해서 밖에 나왔을 때 찬 겨울 바람 속에서그곳의 '조용한 이웃'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호들갑스럽지 않다는 것 만으로도 말없는 이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인간이 어찌 성자 나무를 닮을 수 있겠는가? 단지 소박하고 수수하게 사는 것 조차 너무나 어렵기만 한 세상살이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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