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너무 많은 입 / 천양희

샌. 2007. 1. 29. 09:05

재잘나무 잎들이 촘촘하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

재잘된다 잎들이 많고 입들이 너무 많다

 

이(李) 시인은

마흔살이 되자

나의 입은 문득 사라졌다

어쩌면 좋담,이라 쓰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좋담

쉰살이 되어도 나의 입은

문득 사라지지 않고

목쉰 나팔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좋담?

 

다릅나무 잎들이 촘촘하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

다른 소리를 낸다 잎들이 다르고 입들이 너무 다르다

 

- 너무 많은 입 / 천양희

 

지구는 시끄럽다. 수많은 전파와 소리로 뒤덮여 지구 역사상 이만큼 소란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TV를 켜면 수십 개 채널이 아우성이고 컴퓨터에서도 무수한 말들이 난무한다. 우리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가 '과잉'이다.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그리고 거기에 더해져 과잉의 말들도 있다.우리는 과잉의 중독 환자들이다. 현대인은 날씨 조차 일기예보의 말로 경험한다. 그런 세상에서는 침묵의 가치는 사라지고 자연과의 접촉마저 간접 경험으로 대치된다.

 

말은 많아도 그 속에서 진정한자기 소리, 자기의 노래는 듣기 힘들다. 지금 이 공간에서 내가 내고 있는 소리 또한 소음에 또 하나의 소음을 보태는 노릇이나 아닌지 두렵다. 어느 바보의 아무 의미 없는 넋두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입 다물고 가만있지를 못하는거지? 나이가 드니 입만 살아나고, 정말 어쩌면 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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