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머위 / 문인수

샌. 2007. 2. 8. 08:01

어머니 아흔셋에도 홀로 사신다

오래 전에 망한 장남 명의의 아버지 집에

홀로 사신다

다른 자식들 또한 사정 있어서 홀로 사신다

귀가 멀어

깜깜

소태 같은 날들을 사신다

고향집 뒤꼍엔 머위가 많다

머위 잎에 쌓이는 빗소리도

열두 권

책으로 엮고도 남을 만큼 많다

그걸 쪄 쌈 싸먹으면 쓰디쓴 맛이다

아 낳아 기른 죄

다 뜯어 삼키며 어머니 홀로 사신다

 

- 머위 / 문인수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평생을 억척스레 농사 지으며 5남매를 키우셨는데, 여든 가까이 된 나이에 자식도 손주도 곁에 없다. 어머니 역시 '자식 낳은 죄'의 업보를 쓴 외로움으로 갚아 나가신다. 늙으신 부모를 안타까워하는 자식 또한 밑의 자식을 낳은 천형을 짊어져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머위 잎처럼 쓰디쓴 맛이다.

 

며칠 전에 고향 어머니에게 엿 한 상자를 부쳐 드렸다. 엿의 단 맛이 인생의 쓴 맛을 조금은 달래주려나. 자식 낳은 죄를 조금은 잊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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