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TAO[80]

샌. 2007. 4. 4. 09:57

나는 희망합니다.

국경 없는 세계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은 멀고 먼 희망 사항일 뿐,

오늘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마음으로나마 그려 봅니다.

나는

크지도 강하지도 않은

조그마한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조그마한 나라에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살고 싶습니다.

갖가지 도구가 준비되어 있지만

특별히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생명을 소중히 여겨

위험한 모험을 떠나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가용 없는 집은 없지만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다리로 걸어 다니면 좋겠습니다.

무기 없는 집은 없지만

그 무기를 쓸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게를 열어 거래할 때도

간단한 셈으로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을에서

그런 사람들과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넉넉하게 입을 수 있고

편안하게 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곳에서

이웃 나라와 더불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흘러

평화롭게

살다 보면

아름다운 그곳이

저 세상이 되는 날 오겠지요.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이 장을 읽다 보면 존 레넌의 'Imagine'이 떠오른다. 그리고 토마스 모어의 'Utopia'도 그렇다. 이 장에는 이상주의자 노자가 그리는 이상사회의 모습이 설명되어 있다.

 

내가 그리는 이상사회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농업에 기반을 둔 소규모 자립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산업화에 따른 중앙집중화와 농촌공동체의 몰락이 지금의 생태와 인간 위기를 야기했다. 기계화되고 전체적으로 조직화된 세상에서 인간의 설 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독립적인 소농 중심의 분권화된 농업사회야말로 노자가 그리는 이상사회가 아닐까 싶다. 그곳은 경쟁과 탐욕 대신에 협동과 조화의 가치가 우선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 의미의 이런 공동체는 전세계적으로 해체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 또한 변화의 최일선에서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저항의 소리는 너무나 미약하다.

 

드디어 한미 FTA가 타결되었다. 보수언론은 환영 일색이고, 4년 내내 씹기만 하더니 이 협상을 주도했던노 대통령을 칭송하는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번 협상을 찬성하는 쪽은 대체로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다. 대신에 농촌의 타격은 심각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미고사 직전인 우리 농촌 공동체는 거대 자본의 물결 앞에서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다. 물로 그 자리에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기업농이 등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산업화된 농업은 이미 농업의 본령을 벗어난 것이고, 이득 추구를 위해 반생태적이고 반생명적인 모습을 보일 것은 뻔한 일이다.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 같은 반생명적인 농축산업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장 우리가 얼마의 이득을 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이런 자본 중심의 거대한 체제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지금 후진국이라 불리는 많은 나라들도 결국은 같은 길을 걷도록 강요될 것이다. 끝없는 경쟁과 성취의 사회,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이런 사회는 노자가 말한 '小國寡民'의 나라와는 정반대이다. 히틀러의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본에 의한 전체주의가 아닐까? 결국 우리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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