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TAO[69]

샌. 2007. 1. 26. 11:33

내 이야기를 듣고

전술가들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내 편에서 먼저 공격하려 하지 말고

상대의 공격에 응하는 것이 더 낫다.

100m 전진하려 하지 말고

1km 후퇴해서 방어하는 것이 더 낫다.

이런 전술이라면

팔도 무기도 휘두르지 않으니까

적만큼 쉬 지치지 않는다.

결국 싸우지 않고 이기게 된다."

또 이런 말도 했답니다.

"적을 깔보고 무시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짓이다.

결국 보물을 깡그리 잃게 된다.

그러니

서로 맞서 싸울 때는

뒤로 물러나서 지키는 쪽이 이기는 법이다."

이건 순전히

세상 전술가와 정치가의 생각일 뿐이랍니다.

나는

누군가 총칼을 들이밀 때,

내 목숨이 위험할 때,

그때만 싸우라고 말했을 뿐인데.....

언제나

어디서나

'싸우지 말라' 말했는데....

이런

전술가의 말은

그저

남과 말싸움할 때나

한 번 활용해 보세요.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仍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노자의 가르침은 적을 이기기 위한 전술적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 비폭력의 가르침이다. 물론 노자도 불가피한 싸움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의 자기 방어인데, 요사이는 그 말도 자위권 운운하며 많이 오용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바보 이반'의 나라가 가능하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다. 이상과 꿈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내적 갈등을 겪는다.

 

기독교인이라면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는 예수의 말씀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따를 수 있는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 기독교인은 이런 말씀은 대개 무시해 버리는 것 같다. 또 그렇게 하라고 강단에서 설교하지도 않는다.

 

예수와 노자의 가르침에 공통된 것은 비폭력과 평화, 사랑의 원리다. 예수는 그런 원리가 실현된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라부르고 그 나라에 동참하도록 사람들을 각성시키며 전도했다. 그분은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했지만 그 말씀은 죽지 않고 수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노자는 반대로 은둔의 길을 갔지만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동일한 것이다.

 

이 장의 내용을 노자의 말이 아니라 세상 전술가들의 말로 대치한 것은 일리 있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 같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노자가 한 말씀 하신다.

 

"전쟁을 좋아하는 자, 전쟁으로 망하리라."[哀者勝]

 

예수도 잡히시기 전 마지막 금요일 밤에 자신을 잡으러 온대사제의 군사들에게 칼을 들고 대항하는베드로를 말리며 말씀하셨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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