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12월의 독백 / 오광수

샌. 2006. 12. 18. 13:55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 12월의 독백 / 오광수

 

12월은 되돌아보는 달이다.

그러나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볼 때면 찬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매년 그랬다. 그래서 12월은 늘 아쉬움의 달이다.

 

사람들은 그런 허전함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려 술로 회포를 푸는지 모른다. 그것은 옆 사람의 따스한 가슴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모두가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열심히 살았던 의미가 무엇인지 한 해의 마지막 달만큼 회의가 드는 때도 없다. 곰곰히 생각할 수록 더욱 그렇다. 나는 티끌에다가 우주의 무게를 부여하며,그리고 똥덩어리가 금덩어리인 줄 알고 내 온 생을 바쳐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절로 무너진다. 그렇다고 다른 탈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복잡한 생각은 말자며 다시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지, 산다는 것은 어떻거나 아름다운 일이지. 내가 한없이 부족하고 욕심꾸러기지만 그런 내가 사랑스러운 걸 어떡하지. 사람들 또한 다 불쌍하면서 사랑스러운 걸. 모두들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 걸어가는 순례자들인 걸. 우리는 모두 그 불완전함 때문에 가치 있고 고귀한 존재들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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