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구부러진 길 / 이준관

샌. 2006. 12. 4. 13:44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볕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사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구부러진 길 / 이준관

 

사람의 발길만으로 만들어진 길은 구불구불하다. 바위를 피해가고 냇물을 돌아가면서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동물의 길 또한 마찬가지다.

 

예전의 논두렁은 모두 꼬부랑 곡선이었다.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서 논과 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지 정리를 하면서 바둑판 모양의 직선으로 바뀌었다. 기계가 일하기 좋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길 또한 마찬가지다. 신작로라는 이름으로 산허리를 자르고 뚫고 다리를 놓으면서 넓어지고 곧아졌다. 그리고 시멘트로 땅을 바른다. 그 위를 기계가 쏜살같이 질주한다. 편리하고 빠름을 얻었지만 대신에 많은 생명들이 죽고 다친다. 자연은 곡선을 만들지만, 인간은 직선을 만든다.

 

옆이나 뒤를 돌아볼 줄 모르고 탄탄대로를 막무가내로 달려가기만 하는 사람을 보면 무섭다.

그러나 나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삶을 살고 싶다. 그 길을 가다가 가끔은바위턱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기도 하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들꽃도 고개 숙여 바라보기도 하고, 새들의 노래소리에도 귀 기울이다가, 냇물에 발을 담그고 송사리들과도 장난 치고 싶다.

 

느려서 남에게 뒤쳐지더라도 그렇게 여유있고 느긋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