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 김용택

샌. 2006. 11. 24. 10:08

환장허겄네 환장허겄어
아, 농사는 우리가 쎄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덜이 편히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며루 땜시 농사 망치는 줄 모르고
나락도 베기 전에 풍년이라고 입맛 다시며
장구 치고 북 치며
풍년잔치는 저그덜이 먼저 지랄이니
우리는 글먼 뭐여
신작로 내어놓응게 문뎅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혀서 원
아, 저 지랄들 헝게 될 일도 안된다고
올 농사도 진즉 떡 쪄먹고 시루 엎었어
아,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이사 바로 혀서
풍년만 들면 뭣헐 거여
안되면 안되어 걱정
잘되면 잘되어 걱정
풍년 괴민이 더 큰 괴민이여
뭣 벼불고 뭣 벼불면 뭣만 남는당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을 뙤놈이 따먹는 격이여
야, 그렇잖혀도 환장헐 일은 수두룩허고
헐일은 태산 겉고 말여 생각허면 생각헐수록
이갈리고 치떨리능게 전라도 논두렁이라고
말이 났응게 말이지만 말여
거, 머시기냐 동학 때나 시방이나
우리가 달라진 게 뭐여
두 눈 시퍼렇게 뜬 눈 앞에서
생사람 잡아 논두렁에 눕혀놓고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똥 뀌고 성내며
사람 환장혀 죽겄는지 모르고
곪은 데는 딴 데다 두고 딴소리 허면서
내가 헐 소리 사돈들이 혔잖여
아, 시방 저그덜이 누구 땜시 호강호강 허간디
호강에 날라리들이 났당게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 뿔돋고
시원찮은 귀신이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는개비여
사람이 살면은 몇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겄고
사람덜이 그러능게 아녀
뭐니 뭐니 혀도 말여 사람은
심성이 고와야 허고
밥 아깐지 알아야 혀
시방 이밥이 그냥 밥이간디
우리덜 피땀이여 피땀
밥이 나라라고 나라
자고로 말여 제 땅 돌보지 않는 놈들허고
제 식구 미워하는 놈들 성헌 것 못 봤응게
아, 툭 터놓고 말혀서
쌀금이 왜 이렇게 똥금인지 우린 모르간디
우리라고 뭐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창사도 없는 줄 알어
저그덜이사 뱃속이 따땃헝게
뱃속 편헌 소리들 허고 있는디
그 속 모르간디
그러고 말이시
거, 없는 집안 제사 돌아오듯 허는
그놈의 잔치는 왜 그리도 많혀
땡큐땡큐 하이하이 혀봐야
저근 저그고 우린 우리여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 덕에
뭣 나발들 엥간이 불며
실속없이 남의 다리 긁지 말고
가려운 우리 다리나 착실히 긁어야 혀
그저 코쟁이야, 왜놈이야 허면
사족들을 못 쓴당게
사람들이 말여 쓸개가 있어야 혀 쓸개
아, 생각들 혀보드라고
여직 땅 갈라진 채로 이 지랄들이니
남 보기도 부끄럽고 챙피혀서 말여
긍게 언제까장 이 지랄발광헐 거여 긍게
긍게 북한이 외국이여
꺼떡하면 4천만 동포, 동포 허는디
아, 그러고 말이시
우리가 어디 한두번 농사 망쳐봤어
쩍 허면 입맛 다시는 소리고
딱 하면 매맞는 소리
철부덕 허면 똥 떨어지는 소리여
거, 제미럴 헛배 부를 소리들 작작 허라고
어, 제미럴 우리는 뭐 흙 파먹고 농사 짓간디
고름이 피 안되고 살 안됭게
짤 것은 짜내야 혀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겠더라고
새 세상에 새 칠로 말허겄는디 말여
그 속 들여다보이는
선거고 나발이고
아, 말이 났응게 진짜 말허겄는디
선거만 허면 질이여
거, 뭐여 그러면 민주냐고
민주가 뭣인지 잘 모르지만 말여
제미럴, 가다오다 죽고
총 맞아 매맞아 죽고
엎어져 뒤집혀 죽고
곧 죽어도 말여
우린 넓디넓은 평야여
두고두고 보자닝게 군대식으로 혀도 너무들 허는디
우리는 말여 옛적부텀
만백성 뱃속 채워 주고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고,
논두렁은 비뚤어졌어도
농사는 빤 듯이 짓는
전라도 농군들이랑게
고부 들판에 농군들이여
참 오래 살랑게 벼라별 험헌 꼴들 다 겪고
지금은 이렇게 사람 모양도 아닝 것 맹이로
늙고 병들었어도
다 우리들 덕에 이만큼이라도
모다덜 사는지 알아야 혀
아뭇소리 안허고 있응게 다 죽은 줄 알지만 말여
아직도 이렇게 두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이여
농군

 

-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 김용택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지만 언제 농민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으며 산 적이 있었던가. 땅과 농민은 늘 수탈의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고부 들판 농군(農軍)의 함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시가 나온 지도 20년이 되어 간다. 힘든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때의 어려움은 지금에 비하면 애교에 속한다. 농촌에 가면 옛날을 그리워하는 노인들의 한숨 소리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지금은 거대한 골리앗의 마지막 한 방이 날아오기 직전이다. 가만 둬도 저절로 무너질 참인데 이제는 장렬한 전사만 남았는가. 이 시대를 구원할 다윗은 어디에 오고 있는가?

 

그래도 다시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다. 절망이 곧 희망이다.

그러니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논두렁은 비뚤어졌어도 농사는 빤듯이 짓자.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만은 바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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