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똥파리와 인간 / 김남주

샌. 2006. 7. 27. 14:30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보라고 똥 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을 깊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은 잠시 쉬었다가

물찌똥이나 한번 씨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인간에게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것 아닌 것이다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 똥파리와 인간 / 김남주

 

인간은 불의(不義)에는 둔감하다. 도리어 세상의 불의를 즐기기조차 한다. 대신에 자신의 불이익(不利益)에는 목숨 걸고 덤빈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利)의 법칙이다. 인간 행동의 근원에는 철저한 이기성이 숨어 있다.

 

자본주의가 시대의 흐름이 되고, 세계화니 FTA니 하면서 그런 경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똥파리가 똥덩이에 몰려들 듯, 인간은 누런 황금덩이를 향해 떼지어 몰려들며 아귀다툼을 벌인다.

 

현대의 진정한 신(神)은 맘몬이다. '많이 가지고 모든 것을 차지하여라. 그러면 너희들은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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