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강가에서 / 김수영

샌. 2006. 6. 27. 12:14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 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 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했다

초저녁에 두번 새벽에 한번

그러니 아직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셔츠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 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小人이 돼간다

俗돼간다 俗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 강가에서 / 김수영

 

이 시를 읽으면나 자신의 초상을 보는 것 같다. 시에 공감한다는 것은 시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예전의 아름다웠던이상은 결국 모래성이었고 뜬구름이었다.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도, 그렇다고 앞으로 이루어질 가망도 없다. 세월은 그저 서러움의 무게만 키울 뿐이다. 그 와중에 점점 속물화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고 눈물이 난다.

 

펄펄 뛰는 잉어 같은 그의 생명력에 대비되어 시인의 모습은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시인의 살아가는 힘이다. 스스로를 가련한 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신의 힘이다. 시인은 흔들린다. 그러나 추탕을 먹으며 흐르는 땀을 신문지로 닦고, 오입 자랑을 하고, 그에게는 동요가 없다.

 

세상에는 분명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와 시인 - 그러나역시 분명한 것은 그나 시인이나 세상살이는 외롭고 서럽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어차피 그런 것이다. 우리는 투망을 하며, 그 옆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며 , 그러면서 강가에 함께 서있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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