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패자의 눈물

샌. 2006. 6. 16. 16:34

월드컵이 시작되고 우리나라는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2:1로 이겼다. 축구 열풍이 다시 온 나라를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승리를 기원하고 축하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어떨 때는 좀 지나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4 년 전 우리나라가 4 강까지 올라간 월드컵 때는 나는 우리나라 경기를 한 게임도 보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온 나라 사람들이미쳐버리지 못해 안달하는 듯한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중계를 애써 외면했었다.

그 시간에는 다행히 서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구석에서 술을 마시거나 야외에 나가 있었다. 그때는 삐딱한 그런 분위기를 즐겼다. 중계가 있던 어느 날의 저녁 시간이 기억난다. 지하철을 탔는데 승객은 서너 사람밖에 없었다. 한 젊은 여성이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들뜬 분위기를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지킬 줄 아는 그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었다.

그래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토고와의 경기를 자다가 일어나서 온전히 다 보았다. 주위 사람들 말로는 4 년 전보다는 내 성격이 많이 순화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의 분위기는 유감이다. 요란스런 거리 응원도 그렇고, 이기고 난 다음의 난장판 수준의 뒤풀이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의 혈기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눈에는 좀 지나치게 보인다. 어떤 때는 그런 분위기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축구가 아니고이념 같은 것에 그런 열광이 쏠린다면 그것은 광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프로 리그 축구 경기에 관중석이 텅텅 비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축구 자체를 그렇게 즐기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축구라는 게임에 내재된 폭력성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국가나 민족 대결 차원에서 에너지를 발산하지나 않는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또 하나 우리나라 TV 방송국도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공중파 4 개 방송사 중에서 3 개가 매일 모든 경기를 중계한다. 뉴스도 온통 월드컵 특집이다. TV는들뜬 월드컵 분위기를 만드는데 최고의 원인 제공자 역할을 하고 있다.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좋지만 패자의 눈물도헤아릴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상대방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줄 아는 여유있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스포츠는 어차피 승부가 가려지게 되어 있고 또 그것이 스포츠의 매력이다.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고, 환희의 뒤에는 패자의 눈물이 있다. 오늘의 기쁨이 내일에는 비탄으로 변한다.

그런 패자의 눈물을 볼 줄 안다면 승리의 기쁨도 적당히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승패에 대한 지나친 집착, 그리고 과도하고 열광적인 응원 문화 또한 개선될 여지는 없는지 반성도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에 어려운 시집살이를 했다고 성질 사나운 시어머니가 되지는 말자.

인터넷 또한 온통 승부 얘기 뿐이다. 그 가운데서 작은 그림 하나가 잔잔히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진 팀이나 이긴 팀이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들 모두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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