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슬픈 시대

샌. 2006. 5. 20. 16:33

영국의 찰스 2 세가 버스비 선생의 교실을 방문했다. 그러나 버스비 선생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자를 쓴 채 교실 안을 활보했다. 그러자 찰스 2 세는 모자를 벗어 팔 밑에 끼고서 공손히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나중에 찰스 2 세가 문간에서 작별을 고하려고 하자 그때서야 선생은 찰스 2 세에게 정중히 아뢰었다.

"폐하, 소신이 저지른 오늘의 불경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소신의 학교 어린이들이 이 나라에서 소신보다도 위대한 사람이 있다고 믿으면 소신은 결코 이 어린이들을 지도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육 일화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가 되었다. 나라의 임금이 찾아왔는데 선생은 본 체도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일을 하고, 임금은 모자를 벗고 뒤를 따랐다는 얘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C 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급식 지도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들이 학교로 담임 선생을 찾아가 무릎을 꿇리고 사과를 받아내는 사건이 일어났다. 방송사 카메라 기자까지 대동하고 학교로 쳐들어간 모양으로 모자이크 처리가 되긴 했지만 학부모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비는 교사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무서운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세태가 너무나 험하게 변해가고 있어 답답하고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경위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없으니 여기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류의 사건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번 사건에 시비를 걸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험악하게 변해가는 우리의 세상살이, 철저한 이기주의, 인간의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천박함에슬퍼지는 것이다.

무조건 교사를 존중하는 시대는 지났다. 또 교단에 자격 미달의 교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는 하자가 있더라도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요사이는 어디에도 성역은 없다. 물신주의와 이기주의에 오염이 안 된 곳이 우리나라 어디에 남아 있는가. 가장 성스럽다 할 종교계 마저 예외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비판 받을 것은 비판 받으며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문제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비록 잘못을 한 상대방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는 갖추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자녀 또한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학부모 뿐 아니라 모든 선생,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이 일을 통해 우리 사회가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미덕이 되는 이익 추구의 살벌한이기주의 사회로 변하고 있다. 이런 사회 체제에서는 그 구성원들 또한 마음이 병들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미쳐가고 있으니 미쳐도 미친 줄을 모른다. 순수해야 할 아이들도 못된 어른들을 일찍부터 닮아간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듣고 보는 것이 그런 것들이니 아이들을 탓할 수도 없다.

사건 하나를 너무 비화시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은 이미 일부 교사나 학부모의 손을 떠났다. 우리는 거대한 물결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떠내려 가고 있다. 이런 때라면 버스비 같은 소신 있는 당당한 교사가 나오지도 못할 뿐더러, 설령 어디에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누구가 알아주고 존경해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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