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어떤 청첩장

샌. 2006. 5. 18. 15:11

오늘 아침 우편함에서 B 씨의 편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B 씨와는 거의 30 년 전에 같이 근무했었는데 전근을 가며 헤어진 후로는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서 근무하는지 가끔 궁금한 생각이 드는 정도였지 꼭 만나고 싶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근무처를 알아내서 서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B 씨로부터 온 것은 자녀 결혼에 대한 청첩장이었다. 물론 B 씨의 연락이 무척 반가웠지만 한 편으로는 씁쓰레한 기분도 들었다. 나를 기억해 주고 연락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미리 전화 한 통이라고 주었다면 훨씬 더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냥 달랑 청첩장 한 장만 들어있는 봉투를 보며 솔직히 약간은 불쾌한 기분도 들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짧은 메모라도 남겼어야 옳다고 본다.


우리의 결혼식 문화가 많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찾아가는 결혼식장마다 느끼는 일이다. 대개가 청첩장을 남발해서 식장은 시장바닥같이 복잡하고 소란하다. 손님이 얼마나 들고, 축의금이 얼마나 들어왔느냐가 혼주의 사회적 능력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적을 혼주는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하여 북적이게 만드는 촌극을 연출한다. 이것은 겉치레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풍습 때문이다.


또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조사 장부를 작성하여 놓고 갈 데와 안 갈 데를, 그리고 봉투에는 얼마를 넣을까를 과학적으로 관리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관계가 삭막한 금전적 거래 관계로 변해 버린다. 청첩장을 받을 때 이번 경우는 얼마짜리구나부터 판단하게 된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러니까 청첩장을 세금고지서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껍데기만 서양 흉내를 내지 말고 좋은 알짬을 먼저 닮아야 하는 것이 맞다. 우리의 결혼식도 이제는 가족과 가까운 친지 중심의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잔치로 변해야 한다. 새 출발을 하는 젊은 신랑 신부에게 행사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저 봉투 내밀고 혼주에게 눈도장 찍고는 식당으로 내려가는 우리 풍습은 빨리 바뀌어져야 한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데에 문제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막상 본인이 혼사를 치르게 되면 마땅찮아 하는 그 관례를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있는 탓에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 자녀가 결혼할 때는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만이 모인 조촐한 따뜻한 결혼식을 만들고 싶다. 물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돈을 만나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떻든 다음 주에 있는 B 씨 딸의 결혼식에는 B 씨를 보기 위해서라도 가보아야겠다. 70 년대 후반에 같은 직장에서 근무할 때 B 씨는 딸 쌍둥이 아빠로 인기가 있었다. 갓난아기였던 그 딸이 이제 시집을 가는가 보다. 늘 싱글싱글 웃는 인상이 좋았던 B 씨를 이래서 다시 만나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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