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이름 없는 양치기

샌. 2006. 5. 6. 14:22

TV를 볼 때면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고들이 있다.

여성의 몸을 이용해서 눈길을 끌려는 광고, 지나치게 소비 지향적이고 사치를 부추기는 광고, 승자와 1 등을 찬양하며 경쟁을 당연한 세상의 논리인 양 호도하는 광고들이 그러하다.


요사이 TV에 나오는 광고 중에 칭기즈칸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세상을 호령했던 칭기즈칸도 열정이 없었다면 한낱 이름 없는 양치기에 불과했다는 내용이다. 칭기즈칸과 이름 없는 양치기를 비교하며 양 몇 마리를 몰고 가는 양치기가 초라하게 대비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에게 열정이 없다면 저렇게 초라한 양치기 신세로 된다는 메시지가 그 광고를 보다보면 은연중 들게 된다.


처음 이 광고를 보면서 무척 불쾌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없는 양치기의 삶을 칭기즈칸과 비교하며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광고 제작자의 발상이 천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열정이란 무엇인가? 칭기즈칸의 무모한 열정이 가져온 결과는 과연 어떠했는가? 한 사람의 정복욕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공동체와 가정이 파괴되었으며 그들이 흘린 피눈물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칭기즈칸이 결코 영웅으로 미화될 수는 없다. 나폴레옹, 칭기즈칸 같은 이들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살육전의 괴수들이지 청소년들이 모범으로 따를 위인들이 아니다.


차라리 나는 칭기즈칸 보다는 이름 없는 양치기의 삶이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가 가진 것은 보잘것없어도 칭기즈칸처럼 천하를 차지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욕심은 없다. 비록 양 몇 마리가 그의 전 재산일지라도 그래서 작은 생명조차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여길 그의 삶이 칭기즈칸보다 더 가치 있어 보인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칭기즈칸의 열정을 닮는다면 지구와 거기에 터를 잡고 사는 생명들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시달릴 게 뻔하다.

나도 젊었을 때는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란 나폴레옹의 말을 멋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말만큼 오만불손하고 생명과 자연에 대한 횡포를 드러낸 말도 없을 것이다.


나는 착하고 순한 이름 없는 양치기로 살고 싶다.

크고 강한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제 세상을 살리는 힘은 작고 연약한 부드러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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