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삼각산에 오르다

샌. 2005. 10. 19. 12:44

어제는 삼각산에 올랐다.

구기동-대남문-대동문-위문-우이산장-도선사-우이동, 10:00-16:00.


삼각산(三角山)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서로 이웃하며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예부터 이 이름이 널리 쓰였으나 일제 시대 이후로 주로 북한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 다시 원래 이름인 삼각산으로 부르자고 산림청에서 정부지명위원회에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삼각산은 서울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산이다. 연간 500만 명이 찾는다고 하니까 휴일이면 사람들로 포화 상태가 된다. 어제는 평일인데도 일부 구간에서는 잠시 기다려야 서로 교행을 할 수 있었다.

 

대남문에서 위문까지는 산성을 따라가며 걸었다. 길은 산성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데 비슷한 고도라 힘들지 않으면서도 산길을 걷는 맛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산의 북서쪽 사면은 이미 단풍이 들어서 등산객의 발길을 자꾸만 멈추게 했다.

 



만경대를 오른쪽으로 끼면서 산허리를 돌아 나오면 눈앞에 백운대 암봉의 웅장한 모습이 불현듯 나타난다. 그것은 숨이 탁 하고 멈출 정도로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오래된 옛날, 지하에서 마그마 불덩어리가 식어서 화강암의 대암반을 만들었다. 그때로부터 또 얼마를 지나며 마치 보이지 않는 조각가의 칼처럼 연약한 부분이 침식을 일으켜 씻겨 나가며 지금 보는 것과 같은 형태의 지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백운대를 앞에 두고 그 긴 세월을 상상해 보면서 어지럼증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앞에서 한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이념이나 투쟁, 기쁨이나 슬픔들의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지나칠 때 그분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요사이 사람들은 산에 와도 ‘야호’를 안 하는 것 같아.”

“‘야호’라고 소리치는 톤이 산에 사는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대. 그래서 큰 소리를 못 하게 하는 거야. 우리는 이 산의 손님이잖아.”

 

우리는 이 산의 손님이라는 말이인상 깊게 들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실이 그런 것이다. 주인은 바로 이 산에서 살고 있는 나무들, 풀들, 산새들, 산짐승들인 것이다. 우리야말로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들인 셈이다. 그리고 손님의 입장이라면 마땅히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지구별에 손님으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주인 의식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분별없는 자에게 돌아가면 정말 자기가 주인이라도 되는 양 천방지축 설치고 다니게 된다. 요사이는 그렇게 날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신에 손님으로서의 의식은 우리를 좀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 같다.

 

836m, 백운대 정상은 남겨두고 위문(衛門)을 지나 하산하며 소중한 깨달음을 되새겨 본다. 그것은 우리는 이 지구별에 귀한 손님으로 초대받아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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