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다시 보는 청계천

샌. 2005. 10. 12. 13:12


 

내가 청계천을 처음 본 것은 복개 공사를 하고 있던 60 년대 후반이었다. 그 당시 청계천 위쪽은 복개가 되었고 하류 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당시 청계천 풍경은 수도 서울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지저분했다. 오물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탁한 물이 흐르는 양 편으로는 검은 색의 판자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도대체 저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까 싶어 어떤 날은 그 안에 들어가 보았는데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나왔던 기억도 난다. 천변이 보이는 보도 옆과 다리 난간에는 큰 가림막을 해 놓아 그 부끄러운 풍경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 이후로 청계천은 어두운 지하 세계로 사라져 버렸다.


그때로부터 40 년 가까이 지나서 복개 구조물을 뜯어낸 청계천 복원 사업 덕분에 다시 청계천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따라 청계천 시작점에서 동대문까지 걸었다. 우선 2 년 3 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거창한 사업을 완성시킨 위대한 한국인의 저돌성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의 첫 느낌은 이 작품이 청계천의 이름을 빌린 새로운 인공 하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물이 흐르는 너비도 예상보다 좁았는데 이것은 과거의 청계천 이미지가 남아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21 세기가 만든 새로운 청계천이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하류에서 물을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 하천이 아니라 단순한 수로(水路)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은 중력에 의해 물이 아래로 흐르는 외에는 아무 기능도 못하고 있다. 농촌 들판을 지나가는 도랑과 비슷하다. 그것도 시멘트 도랑이다. 사람들이 모이지만 사람과 하천 사이에 생태적 교류는 없다.

 




다녀온 사람이면 하나같이 감탄을 하니 나는 좀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고 싶은데, 또 하나 지금의 청계천은 사람 중심의 설계에 너무 인공적이며 문명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양쪽에 시멘트벽이 솟아 있고, 가운데로 물이 흐르는 양편으로는 산책로가 나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한쪽 산책로는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사람의 발길로 포위된 하천은 너무 답답해 보인다. 나중에 물고기나 수생식물들이 살더라도 조금은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또 사람이 걸어 다니는 산책로를 흙길로 만들지 않는 까닭을 모르겠다. 하천변에까지 시멘트로 도배를 해서 흙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흙장난할 수 있는 터까지 있다면 더 금상첨화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앞으로 자연 하천으로서의 회복 가능성 여부이다. 지금처럼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유지되는 것은 반쪽 복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청계천으로 흘러들어오는 상류 지천의 연결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도심 개발로 인해 지천들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단순한 수로로서의 역할과 도시적 휴식 공간을 넘어 자연적이고 생태적이며 역사가 서려있는 청계천이 되자면 사실 지금부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지역은 양 옆의 시멘트 옹벽이 너무 높아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앞으로 녹색 식물이 벽을 덮으면 훨씬 더 나이질 것이다.>

 


<반가운 것은 군데군데 이렇게 나무 말뚝을 박고 수초를 기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 사이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본 것이 제일 반가웠다. 화려한 분수 같은 볼거리 보다는 이런 배려가 훨씬 더 고맙게 느껴졌다.>

 

몇 가지 비판적인 얘기를 적었지만 이만큼이라도 복원된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 견고했던 시멘트를 걷어내고 푸른 자연을 회복하려는 발상을 하고 실행에 옮긴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특히 이것인 단발적 사업이 아니라 최근의 서울숲 조성이라든가 남산순환도로의 차량통행 금지 조치, 그리고 미군기지 이전 후의 용산공원 조성 등에 이르기까지 삭막했던 도시에서 이제 자연회복운동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여서 더욱 반가운 것이다.

 

어떤 물질적 풍요나 문명의 발달도 자연을 떠나서는 결코 인간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새 청계천을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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