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시인은 '효자동 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은행잎들 우수수 밀려와
가을이 되면
나는 효자동에 가고 싶어라
효자동 골목길은 오래된 향내가 묻어 있는 길이다. 거기에는 새로 개발된 주택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다. 이런 효자동 골목길을 매일 지나다닐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축복받은 일이다.
효자동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늘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밝고 화려하게 칠해진 빨간 대문집인데 저 집에는 왠지 작고 예쁜 사람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도 저런 빨간 대문이 달린 집에 살고 싶어진다.
예전에 단독주택에 살 때 우리 집 대문 색깔은 어두운 녹색이었다. 2. 3 년에 한 번씩 새로 칠을 하면서 페인트 가게에 가서 꼭그 어두침침했던 색깔만 고집했다. 10여 년간 살면서 한 번도 색깔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그때는 왜 빨간 대문 생각을 해보질 못했을까? 대문 앞에 꽃 한 송이라도 심어볼 생각이 왜 전혀 들지 않았을까?
이제 내 다시 마당 딸린 작은 집 한 채 갖게 된다면 그때는 철대문에 빨간색을 칠하고 싶다. 가장 밝고 화려한 빨간색을 칠하고 싶다. 그리고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낮은 담장에는 장미꽃을 올릴 것이다. 장미꽃 넝쿨 우거진 작은 집에서 그저 착하고 예쁘게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