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똥 누고 가는 새 / 임길택

샌. 2005. 4. 15. 13:17

물들어가는 앞산바라기 하며

마루에 앉아 있노라니

날아가던 새 한 마리

마당에 똥을 싸며 지나갔다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나

처음엔 웃고 말았는데

허허 웃고만 말았는데

 

여기저기 구르는 돌을 주워 쌓아

울타리 된 곳을

이제껏 당신 마당이라 여겼건만

오늘에야 다시 보니

산언덕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았다

 

떠나가는 곳 미처 물을 틈도 없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지워버리고 가버린 새

금 그을 줄 모르고 사는

그 새

 

- 똥 누고 가는 새 / 임길택

 

독도 문제로 나라가 소란하더니, 이젠 동아시아 3국이 비슷한 열기에 휩싸여 있다.

그에 편승해 다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하나인 땅에다 금을 그어 놓고는 내 것, 네 것을 따지며 싸움박질을 하는 인간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민중을 부추기며 이런 망령을 가끔씩 되살려 낸다.

땅만 가르는 것이 아니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선과 악을 나누고, 익충과 해충을 나눈다.

 

한 개인의 경우에도 주변을 돌아보면 무수한 금 긋기와 가르기, 땅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다.

버리고 산다면서 시골로 들어갔는데 나 역시 한 평의 땅을 가지고 이웃을 원망하며 싸우고 있다. 단순하고 본능적인 동물의 영역 다툼이 인간의 세계에서는 교활해지고 광기에 빠져 집단 학살로까지 이어진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蝸牛角上爭(달팽이 뿔 위의 싸움)이 생각 난다. 작은 달팽이 뿔(더듬이) 위에 촉씨국과 만씨국이 자리잡고 서로 땅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수만 명이 죽는 전투를 벌였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꼭 땅만이랴? 많은 꿈들, 욕망들, 투쟁들이 저 넓은 우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달팽이 뿔 위의 어리석은 다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또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경계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심한 새 한 마리, 애지중지 내 땅에다 똥을 싸놓고 날아간다.

그 지나간 자리에 아무런 경계도, 흔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