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는 들판을 가다 보면
저 흙 속에 한 여자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초록 깃털로 눈뜨는 풀들과 새 떼들을
누가 저토록 간절히 키울 수 있을까요
봄비 오는 들판을 가다 보면
나도 저 흙 속의 여자가 키우는
초록 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혹은 풀들처럼 싱싱하게 새 떼처럼 가뿐하게
아이들을 키워내고 싶습니다
하나쯤은 곁에 두고
볼을 부비며 살고 싶지만
봄비 오는 들판을 가다 보면
문득 저 나무에도
한 여자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끝없이 기도를 하는
푸른 손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초록 나무 속에 사는 여자 / 문정희
돋아나는 새싹 속에 그 여자가 있다.
산골짝을 흘러 내리는 도랑물 속에도 그 여자가 있다.
저 어린 아이의 맑은 눈동자 속에도 그 여자가들어 있다.
땅 풀리는 저 흙 속에, 바람 속에, 따스한 봄 햇살 속에서 그 여자는 살고 있다.
봄날 들판에는 그 여자가 키우는 초록 아이들로 가득하다.
내 어린 날에, 나는 그 초록 아이였고, 초록 아이는 다른 초록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사람들은 초록 아이를 만나려 남쪽으로 달려간다. 화살보다 빨리 날으는 KTX를 타고서, 그러나 칼바람 소리에 초록 아이는 무서워 숨을지 모른다.
오늘은 그 여자의 따스한 품에 안기고 싶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박용재 (0) | 2005.04.08 |
---|---|
바퀴벌레는 진화중 / 김기택 (0) | 2005.04.01 |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0) | 2005.03.21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반칠환 (3) | 2005.03.12 |
울안 / 박용래 (0) | 2005.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