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초록 나무 속에 사는 여자 / 문정희

샌. 2005. 3. 25. 14:22

봄비 오는 들판을 가다 보면

저 흙 속에 한 여자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초록 깃털로 눈뜨는 풀들과 새 떼들을

누가 저토록 간절히 키울 수 있을까요

봄비 오는 들판을 가다 보면

나도 저 흙 속의 여자가 키우는

초록 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혹은 풀들처럼 싱싱하게 새 떼처럼 가뿐하게

아이들을 키워내고 싶습니다

하나쯤은 곁에 두고

볼을 부비며 살고 싶지만

봄비 오는 들판을 가다 보면

문득 저 나무에도

한 여자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끝없이 기도를 하는

푸른 손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초록 나무 속에 사는 여자 / 문정희

 

돋아나는 새싹 속에 그 여자가 있다.

산골짝을 흘러 내리는 도랑물 속에도 그 여자가 있다.

저 어린 아이의 맑은 눈동자 속에도 그 여자가들어 있다.

땅 풀리는 저 흙 속에, 바람 속에, 따스한 봄 햇살 속에서 그 여자는 살고 있다.

 

봄날 들판에는 그 여자가 키우는 초록 아이들로 가득하다.

내 어린 날에, 나는 그 초록 아이였고, 초록 아이는 다른 초록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사람들은 초록 아이를 만나려 남쪽으로 달려간다. 화살보다 빨리 날으는 KTX를 타고서, 그러나 칼바람 소리에 초록 아이는 무서워 숨을지 모른다.

 

오늘은 그 여자의 따스한 품에 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