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울안 / 박용래

샌. 2005. 3. 7. 14:30

탱자울에 스치는 새 떼

기왓골에 마른 풀

놋대야에 진눈깨비

일찍 횃대에 오른 레그호온

이웃집 아이 불러들이는 소리

해지기 전 불켠 울안

 

- 울안 / 박용래

 

내가 화가라면 이 광경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

내가 사진을 잘 찍는다면 이 풍경를 찍어보고 싶고, 내가 작곡가라면 이걸 음악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

이 시에서는 새, 풀, 눈, 닭, 사람이 울안의 한 가족이다. 거기에는 주인공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특히 '불켠 울안'이라는 표현은 참 따스하다. 그곳은 모든 사람들이 돌아오는 안식의 쉼터다.

이 작은 평화의 울안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그런 마을들이 모여 평화의 나라를 만들 것이다.

현대의 비극은 이렇게 따스하게 불켜진 울안의 상실에 있지 않는가 싶다. 모든 것이 해체되어 떠난 울안은 이제 삭막하다.새가 떠나가고, 흙이 떠나가고,그리고 이젠 더 이상 아이를 부르지 않는다. 해 지기 전에 불을 켤 필요가 없다.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내 속에 따스한 불 꺼진지 얼마나 오래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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