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야생 / 백무산

샌. 2005. 3. 1. 17:51

야생에는 식물성 냄새가 난다

야생의 들짐승

야생의 날짐승

그리고 야생의 여자

야생의 수생짐승

그들을 안아볼 때마다

야생에는 식물성 냄새가 난다

 

어두운 밤길에서 만나는

산짐승의사나운 눈빛도

밤의 숲 속 짐승들의 거친 교미도

저들끼리 싸워 피 흘릴 때도

나무들이 뿜어대는 뜨거운 열기인 양

야생에는 식물성 냄새가 난다

 

저들은 분리되지 않은

그리고 분화도지 않은

무수한 촉수와 날카로운

긴장의 그물을 가졌다

대상과도

자신의 몸과도

 

동물은 사람뿐이다

 

- 야생 / 백무산

 

그래 그래 하며 술술 읽히던 시가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뒤통수를 친다 - '동물은 사람뿐이다'.

시인은 식물과 동물로 나누는 대신에 식물성이란 표현을 쓴다. 식물성이란 분리되지 않은, 분화되지 않은 자연과 하나된 상태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것은 자연의 완전성이며 도(道)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야생의모든 것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식물성이다.

반면에 인간은 창세기 설화가 말하는대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하느님과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그래서 끝없는 갈증에 목말하며 방황하는 동물이 되었다. 그 동물은 자연과 연결된 촉수를 잘라내고 스스로의 눈 밝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그 동물을 구원하는 빛은 내부에 숨어있는 식물성에서 밝아올 것이다.

오늘 밤에는 야생의 남자가 야생의 여자를 껴안는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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