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연탄 한 장 / 안도현

샌. 2005. 2. 20. 14:50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어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연탄 한 장 /안도현

 

날이 다시 추워졌다.

서울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지고 바람까지 부니 한낮인데도 한기가 매섭다. 산책을 하려고 밖에 나갔다가 동장군의 서슬에 놀라 들어오다.

가난했던 시절, 사람들은 연탄 한 장이 주는 따스함과 든든함으로 겨울을 이겨냈다. 비록 가스에 취하기도 하고, 한밤중에 일어나 불을 갈아야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자기를 태워서 한결같이 온기를 내뿜는 연탄으로 인해 따스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다.

광에 가득 쌓여있는 연탄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하고 든든했다.

세월이 흘러 이젠 방안에서 손가락 하나로 열기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매캐한 내음과 함께 발갛게 달아오른 연탄 불꽃과 그 온기가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리고 고작 내 자신의 일에만 매여서 남과 주위는 돌아보지도 못하는 이 좁은 마음보를 돌아보면 저 연탄 한 장에도 부끄러워진다.

나는 그 누구에게 따스한 온기하나 전해주는 사람인가?

나는 그 누구가 안심하게 길을 걷도록 마음 쓰며 보살펴주고 있는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그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스한 사람이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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