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반칠환
세상도 아프고 나도 아프다.
나도 불쌍하고 세상도 불쌍하다.
병든 세상을 아파하는 깊은 슬픔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측은지심은 동정심이 아니라 인간의 따스하고 순수한 의식이다.사물의 깊은 면을 바라볼 때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지고 세상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다른 존재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며 행복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이다.
맹자(孟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어짐의 극치라고 했다[惻隱之心 仁之端也].
성욕, 명예욕, 소유욕이 강한 것 같지만 그것은 자기 만족일 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약해 보이고 잘 드러나 보이지도 않는 사랑과 자비의 힘이다.
그 작으면서 큰 힘에 의해 세상은 움직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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