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다, 저것들도 먼지와 수분으로 된 사람 같은 생물이란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시멘트와 살충제 속에서만 살면서도 저렇게 비대해질 수 있단 말인가. 살덩이를 녹이는 살충제를 어떻게 가는 혈관으로 흘려보내며 딱딱하고 거친 시멘트를 똥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입을 벌릴 수밖엔 없다, 쇳덩이의 근육에서나 보이는 저 고감도의 민첩성과 기동력 앞에서는.
사람들이 최초로 시멘트를 만들고 집을 짓고 살기 전, 많은 벌레들을 씨까지 일시에 죽이는 독약을 만들어 뿌리기 전, 저것들은 어디에 살고 있었을까. 흙과 나무, 내와 강, 그 어디에 숨어서 흙이 시멘트가 되고 다시 집이 되기를, 물이 살충제가 되고 다시 먹이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빙하기, 그 세월의 두꺼운 얼음 속 어디에 수만 년 썩지 않을 금속의 씨를 감추고가지고 있었을까.
로보트처럼, 정말로 철판을 온몸에 두른 벌레들이 나올지 몰라. 금속과 금속 사이를 뚫고 들어가 살면서 철판을 왕성하게 소화시키고 수억 톤의 중금속 폐기물을 배설하면서 불쑥불쑥 자라는 잘 진화된 신형 바퀴벌레가 나올지 몰라. 보이지 않는 빙하기, 그 두껍고 차가운 강철의 살결 속에 씨를 감추어둔 채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아직은 암회색 스모그가그래도 맑고 희고, 폐수가 너무 깨끗한 까닭에 숨을 쉴 수 없어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뜬 채 잠들어 있는지 몰라.
- 바퀴벌레는 진화중 / 김기택
바퀴는 3억 년 전에 이 지구상에 출현하여 지금은 4만 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하게 진화해 왔다.
그 중에서 해충으로 분류된 것은 20종 정도인데, 그들은 언제부턴가 인간의 거주지로 몰려와 서로 친구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바퀴에 대한 인간의 적대는 다른 어느 생물종보다혹독하다. 말 그대로 바퀴와의 전쟁(컴배트)이다. '컴배트'가 드디어 바퀴를 몰아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3억 년간 진화해 온 바퀴의 생명력과 적응력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들의 몸은 핵폭발에서도 살아남는다고 한다. 강한 약을 쓰면 바퀴는 더 강한 내성으로 대응한다.인간은도리어 바퀴가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진화하는데 한 몫을하고 있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지금 바퀴는 인간을 노려보며 콘크리트 속에서 강철 같은 무장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끔찍하다.
'아직은 암회색 스모그가 그래도 맑고 희고, 폐수가 너무 깨끗한 까닭에....'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가 이렇게 암담하다면 인간은 바퀴에게서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 당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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