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사인

샌. 2005. 2. 18. 22:27

오랜만에 터에 다녀왔습니다.

겨울이면 발걸음이 뜸해지는데 올해도 수도관이 어는 바람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보온 준비를 단단히 했건만 지난 1월의 추위에 견디지 못한 모양입니다. 펌프가 마당에 노출되어 있고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자위를 합니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정이 깊다면 자꾸만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겠지요. 오랜만에 만난다면 반가움 더욱 클 것이고요.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아무리 정이 깊은 사이라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부딪치며 쌓이는 고운 정 미운 정이야말로 단단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기본일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덫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오랜만에 찾아간 곳이 무척 서먹서먹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낯선 손님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럴 때는 설상가상으로 씁쓰레한 예전의 기억들까지 스물스물 되살아나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이것이 단순히 겨울이라는 계절 탓인지, 아니면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미지의 사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서로 서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거기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뿐이고, 우주로부터 오는 또는 우리 내면에서 나오는 사인을 읽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주위 환경과의 상호 작용이지요. 눈에 보이는 현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상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그림자의 흔들림을 통해서 숨겨진 질서의 한 자락을 희미하게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몸에도 탈이 생겨서 며칠 전에는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았습니다. 그럭저럭 버티던 장이 이제는 나 못 살겠소 하고 사보타지를 하고 있습니다.

몸이 주는 사인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무절제한 생활이 부른 반작용인데 당연히 그간의 내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몸에 나타난 이상(異常)은 무언가의 부조화며 그 근원은 마음의 문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조화(調和)의 가치에 대해 새삼 새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근원에서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것마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많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좀더 성찰할 수 있는 기회는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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