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백색 마녀의 저주

샌. 2005. 2. 3. 14:26

백색 마녀는 천사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보통의 마녀는 검은 옷에 무시무시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어린아이도 좋아할 정도로 밝은 외모의 마녀입니다. 그녀는 풍요와 행복의 미래를 약속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갑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술에 빠져듭니다. 사람들은 마녀를 따라가는 자신의 발걸음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매 순간 제공되는 달콤한 유혹에 넋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마녀의 무서운 저주가 숨어 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들려준 ‘백색 마녀의 저주’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백색 마녀란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친구가 설명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마녀의 주술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일부는 주술의 효력이 미치지 못해 마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고를 들을 수 있겠지요.

 

현대 문명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미친 자본주의의 해악은 심각합니다.

 

저의 편협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자본주의는 자본의 증식과 이윤 추구가 제일 목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인간이든 자연이든 수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이 그런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인적자원으로밖에 취급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이럴진대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두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신(神)과 종교를 부정한다고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것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공산주의보다 더 교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종교의 타락은 우리가 눈만 돌리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서로가 잘 살겠다는 경쟁으로 인하여 인간관계는 파괴되고, 자연은 신음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부는 늘어난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치르는 대가는 너무나 큽니다. 소외계층과 말 못하는 생명들의 아픔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녀의 주술에 걸린 우리의 눈이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문명에서 벌써 어두운 죽음의 냄새가 풍겨 옵니다. 그러나 대안도 잘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이 100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오늘 사무실에서는 스님을 살리자는 서명이 있었습니다. 스님의 단식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비판하는 쪽의 현실 논리 또한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이 생명을 걸고 요구하는 소리가 뭔지 좀더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까짓 도룡뇽 좀 죽으면 어때? 사람이 우선 편하고 잘 살게 되면 그만이지.” 옆 사람이 빈정대며 한 이런 식의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다해가는 스님의 육신은 우리의 메말라가는 마음이고, 죽어가는 자연의 모습입니다. 이웃 생명들의 신음 소리는 곧 우리들의 비명 소리로 변할지 모릅니다. 아마 백색 마녀가 노리는 것이 이것일지 모릅니다. 그것이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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