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은 각양각색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꿈을 꾸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서 이상과의 괴리만 느끼며 부득이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부의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며 만들어 갑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의 보편적 가치관이나 인간이 만든 제도,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오늘 아침에는 김미순님이 쓴 ‘너무 가난해서 너무 행복한 삶’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손에 잡으면 맑은 솔바람이 불어와 내 탁해진 마음을 고요히 정화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빛 바래가는 내 초심을 다시 아름답게 물들여 줍니다.
‘데니’와 ‘젬마’로 불리는 이 부부 이야기는 책뿐만 아니라 TV ‘인간극장’으로도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무소유의 행복한 삶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데니’와 ‘젬마’는 그들의 가톨릭 세례명입니다.
재산이라고는 배낭 몇 개에 담을 수 있는 옷이나 일용품이 전부이고, 북한산 아래 ‘마운틴’이라는 작은 월세 찻집에서 차를 팔며 살고 있습니다.지금은인근의 다른 장소로 찻집을 옮겼다는 얘기도 들립니다만 아마 책에서 얘기하는 생활과 대동소이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루 열 잔 정도씩 팔아서 나오는 한 달 수입이 약 90만원 정도, 그걸로 가게 월세, 공과금을 내고 나머지가 그들의 한 달 생활비라고 합니다. 도시인의 최저생계비에도 한참이나 미달되는 액수지만 그래도 그들은 서울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된 생활 무대는 북한산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 돈에 쫓기지도, 시간에 쫓기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운 북한산이 그들의 마당이고, 정원이 됩니다.
글을 읽으면 청빈(淸貧)이 무엇인지를 절로 터득하게 됩니다. 산이 좋아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무소유의 삶, 거기서 우러나오는 평화와 행복이 물질에 찌든 나를 사정없이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분들 영혼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제일 부럽습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왠지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나지 않아도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슬쩍 ‘마운틴’에 찾아가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습니다.
두 분은 분명 현대인이 갖지 못한 새로운 삶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 속으로 들어간 수행자들의 무소유보다 더 어려운 이렇게 세속도시 한가운데서 생활인으로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길을 따를 수는 없지만 그분들의 삶은 이 제동 풀린 물질만능의 시대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오염되고 속화(俗化)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수년 전 내 자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런 생활을 꿈꾸며 절단내듯 낙향의 길로 들어섰지요. 계획대로라면 지금은 직장도 그만 두고 산 속에 들어있어야 하는데, 송두율님이 썼던 ‘경계인’이라는 말을 내 식대로 해석해서 지금의 나에게도 쓰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간과 내공이 필요함을 요사이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행복하려면 적게 가져야 한다’ ‘무욕(無慾)과 정직’ - 단순하지만 꼭 마음에 새기고픈 메시지입니다.
‘행복하려면 적게 가져야 한다.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살되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 한다. 욕심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존재 -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 - 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욕심 때문이며, 욕심을 부리고 산다면 우린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남들과 반드시 똑 같이 살 필요는 없어요. 남들과 다르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구요. 누구나 행복하길 바라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할 거예요. 하지만 행복이라는 목적과 그 방법이 일치하지 않아 힘들 때가 많지요. 생활은 단순하게, 생각은 깊게 하세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보일 거예요. 그리고 자연을 보세요. 바위 틈을 뚫고 피어난 진달래, 제 마음대로 가지를 뻗는 소나무, 눈망울을 굴리며 즐겁게 노래하는 새들, 모두들 거친 바람이나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순리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요. 자연의 삶에 반칙이나 간계는 없어요. 조급함이나 욕심, 집착도 없구요. 우리, 함께 더불어서 자연처럼 행복하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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