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하울의 움직이는 성

샌. 2004. 12. 31. 21:22

가족과 함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다.

며칠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큰 아이가 표를 끊어온 것이다.

오래 전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나이였으니까 20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만화 영화가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었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코난의 다음 편 때문에 일요일이 무척 기다려졌었다.

지금은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전쟁을 치르고 난 뒤의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였는데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진 자연과 동심의 순수함과 문명 비판 등이 어우려져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만화 영화하면 나에게는 코난이 제일 먼저 연상된다.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닌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싶었던 것은 코난이 준 연상 작용 때문이었다.

특히 감독도 같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실이 더욱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재미있었다고 하는데 나는실망만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뚜렷한 줄거리가 없이 산만하게 느껴졌고,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분명한 메시지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감독 최초로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사랑의 아름다움이나 위대함이 감명 깊게 그려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청명한 색채로 그려진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굴뚝과 연기로 상징되는 문명 비판, 반전(反戰) 메시지가 분명한 전쟁의 참혹한 모습 등은 평화로웠던 풍경과 대비되어 실감나게 그려졌다.

또한 특이한 기능과 모습을 띈 움직이는 성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또 하나, 영화에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세기말적인 묘한 분위기, 그리고 마법과 마술로 가득한 동화 같은 세계는 코난에서 느낀 것과 비슷했다.

코난 이상의 것을 기대했던 바람은 실망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가족과 같이 올해의 마지막 날을 영화 한 편 보면서 보낸 것에 의미가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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