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밑바탕 정서에는 한(恨)이 숨어 있다고 한다.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한은 핏줄을 따라 대대로 이어지며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이팝나무를 보면 이상하게도 그런 한이 먼저 떠오른다.
5월에 흰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는 겉으로만 보면 화사하고 화려하다.
마치 함박눈을 뒤집어쓴 듯 온통 하얀색인데 햇빛이라도 비치는 날이면 눈이 부실 정도이다.
이름 그대로 하얀 쌀알을 나무에 붙여놓은 것 같다.
그런데 나무 이름 탓일까, 결코마음 편하게 꽃을 감상할 수는 없다.
이팝은 이밥을 뜻하는데, 배 곯은 사람들이 저 꽃을 보며 한 공기 가득 담겨나온 하얀 이밥을 연상하며 이름을 붙였으리라고 충분히 상상이 된다.
집에 양식은 떨어지고 새끼들은 배 고프다고 울 때 풀뿌리라도 캐러 산에 오른 가난한 백성의 눈에 띈 이팝나무는 한없이 서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팝나무에는 굶주림과 연관된 얘기들이 많이 전해온다.
어느 지방에는 어린아이가 죽으면 동구 밖 야산에다 묻었는데 그 주위에는 지금 이팝나무 숲이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영양 실조로 죽어가는 아이 부모의 가슴앓이는 어떠했을까?
아마 죽은 아이의 영혼이나마 흰 쌀밥을 마음껏 먹으라고 눈물을 뿌리며 이팝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 심었을 것이다.
가끔씩 눈에 띄는 이팝나무를 보면 이런 생각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그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풍요의 시대에도 세상의 구석진 곳에서눈물짓는 이웃이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