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이 물었다. "가난 속에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더라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좋지. 그러나 가난 속에서 즐거워하며, 부자가 되어 예법을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지." 자공이 말했다. "옛 시에 '끊거니 다듬거니 쪼거니 갈거니' 하였는데 이를 두고 이른 말인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야, 인제 너하고 시를 이야기하게 되었구나. 한 마디를 일러준 즉 다음 것까지 아는구나."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 學而 9
제자와 스승 사이의 아름다운 대화다. 묻고 답하는 가운데서 깨우치고 격려하는 사제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자공은 공자 제자 중에서도 제일 큰 부자였다. 그러니 질문도 빈부에 관한 것이었나 보다. 자공의 물음에 스승은 그보다 더 높은 단계가 있음을 깨우쳐 준다.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 사람을 못 당한다는데 가난마저 즐길 줄 아는 경지를 스승은 보여준다. '빈이락(貧而樂)'은 공자가 여러 차례 강조하는 말이다. 제자는 바로 옛 시의 한 구절을 읊는다. 노력과 정진을 의미하는 '절차탁마(切嗟琢磨)'다. 대화의 핵심을 시의 한 구절로 대치함으로써 스승의 칭찬을 받는다. "얘야, 인제 너하고 시를 이야기하게 되었구나. 한 마디를 알려주니 다음 것까지 아는구나." 아마 자공은 무척 뿌듯했을 것 같다.
이 대화에서 시를 대하는 공자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시의 일차적 목적은 배우고 깨우치는 교육적 효과에 있었던 게 아닐까? 공자가 <시경>을 편찬한 것도 시를 통해서 인간 완성의 길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 같다. 공자는 <시경>에 나오는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음[思無邪]'이라고 했다. 시를 통해 그런 마음의 순수함을 회복하려는 게 공자의 바람이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