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에는 1960년대 초중반에 쓰인 글이 주로 실려 있다. 그때는 민정이양과 한일회담 등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한 시기였다. 선생은 줄기차게 군사정권에 대항하며 권력자와 각을 세운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 역시 반대한다. 돈과 경제를 위해 민족 자존심을 팔아먹는 걸 좌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계엄령을 발동하고 조약을 비준한다. 선생은 이렇게 외친다.
"달러가 아니고는 못 사나요?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면 어떻습니까. 나라 운명을 한일회담에다가 매고, 비겁하게 벌벌 떨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살려면 우리 손으로 우리끼리, 살다 못 살면 같이 죽지 하는 각오를 해서만 이 난관을 열 수 있습니다. 나더러 무식하답니까. 어저께 우리 집에 강도로 들어와서, 우리 아버지 죽이고, 우리 어머니 강간하고, 있는 세간 툭 털어간 놈더러 오늘 어업자금 줍시오, 민간차관 줍시오, 그것은 무식이 아닙니까."
언젠가는 한일간에 국교가 열려야 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족정기에 관한 문제였다. 군사 정부는 일본 돈을 들여와서라도 경제 발전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경제제일주의가 아직까지 망령으로 떠돌고 있다. 노인들은 박정희 시대를 향수로 추억한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민 의식은 별로 진보한 것 같지 않다. 밥은 굶으면 한때 약해지지만 정신이 타락하면 몇 대를 가도 바로잡기가 어렵다는 선생의 한탄이 들리는 듯하다.
개인이고 국가고간에 인격은 참이다. 참이 죽고는 주체성을 유지하지 못 한다. 기운이 벌써 죽은 사람이 무슨 외교를 바로 하며 스스로 졌다 하는 느낌을 갖는 국민이 어찌 국제간에 당당히 설 수 있겠나. 인생이 위의기(威意氣)와 정신이 서야 사람이지 정신이 죽었는데 어떻게 일을 바로 하겠나. 군사정부는 경제 제일이란 소리를 자꾸 하지만 그 소리 새삼스레 하지 않아도 하는 것이요, 필요한 것은 국민의 정신이다. 의기다. (1967)
우리의 근본 문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나. 국민성격 건설, 국민정신 일으켜세움에 있지 않나.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그것부터, 독립한 국민으로서의 정신부터 넣어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어찌 그것은 잊고, 가지 문제, 사사 생각에 정신이 팔렸나. (1967)
미국 사령관의 허락 없으면 한 방 쏘지도 못하는 그까짓 무기 믿지 말고 네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정신을 믿으려무나. 일본 군벌과 손잡으려는 그런 따위 어리석은 생각 말고 바로 알아만 주면 목숨도 내놓고 오는 우리 민중을 믿으려무나! 돈 생각부터 하지 말고 정신 생각부터 제발 해보려무나! 일본 백성으로 살기보다는 한국 사람으로 죽을 생각을 해보자꾸나! (1967)
정말 민정을 원하거든 깨끗이 놓고 물러가고, 그렇지 않거든 4년만 아니라 40년이라도 계엄령을 펴고 해! 칼을 떼지는 못하고 민중이 옳은 줄은 알아 두루마기는 입고, 그 두루마기 밖으로 뚝 버틴 칼이 짐승 꼬리 같아 참 보기 싫다. 또 혹 책임감 있어서 뒷마련을 다하고 물러선다 할지 모르나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말이다. 책임감의 탈을 쓰고 권력욕에 연연해 그런 것이다. 내가 아니면 나라일을 누가 걱정해, 하는 것이 매우 장한 듯 하나 그것은 케케묵은 봉건사상이다. (1963)
여러분, 무조건 뭉쳐라, 복종해라 하는 독재자의 말에 속지 마십시오. 우리는 개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지만 그 하나는 분통에 들어가서 눌려서 꼭 같은 국수발로 나오는 밀가루 반죽 같은 하나는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는 개성으로 하는 하나입니다. 3천만에서 2,999만 9,999가 죽는 일이 있어도 남은 한 알 속에서 다시 전체를 찾고 살려낼 수 있는,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그러한 개성적인 하나입니다. (1963)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절대로 먹는 것만으로는 살지 못한다. 또 먹는다 해도 혼자나 몇이 먹는 것이 먹는 것 아니다. 골고루 먹는 것이 참 먹음이요, 참으로 밥을 바로 먹었을 때 밥은 결코 육신의 양식만이 아니다. 정신도 함께 자란다. 군인정치 10년의 죄는 씨알의 정신을 타락시켰다는데서 그 극점에 이른다. 밥은 굶으면 한때 약해지지만 정신은 타락하면 몇 대를 가도 바로잡기가 어렵다. 이제 민족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찌하려느냐. (1971)
이 도둑놈들아, 이순신 팔아먹지 말고 이순신이 또 나게 하려무나! 그것이 정말 이순신 존경 아니냐. 이순신이 하나만이냐. 이 나라의 어느 여자의 탯집도 다 이순신을 낳을 수 있다. 다만 너희 정치한다는 놈들이, 호랑이 아니 나와야 여우 같은 놈들이 뽐낼 수 있을 것이므로 호랑이를 못 나오도록 한 것 아니냐. 그것이 적어도 이조 5백 년 역사 아니냐. 그래서 남들이 다 튼튼한 민족국가 세우는 때에 우리만이 실패한 원인 아니냐. (1971)
사는 길이 결코 발끝에 있지 않고 저 먼 앞에 있다. 땅이 아니고 하늘에 있다. 지금 있는 것에 있지 않고 장차 올 것에 있다. 뵈는 것에 있지 않고 뵈지 않는 이치에 있다. 힘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 (1972)
새 비전을 말하는 데 잠깐 하나 첨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동양사상, 특히 노장(老莊)의 무아(無我), 무위(無爲)주의다. 오늘의 이 세계적인 위기는 인본주의 서구사상의 당연한 귀결로 온 것이라 할 것인데, 새 문명이 일어나야 할 것을 생각하면서도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떠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깨치기 위해서는 노자 장자의 철학을 참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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