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72]

샌. 2011. 7. 10. 12:28

설결이 제자인 허유를 만나 물었다.

“그대는 어디를 가는가?”

허유가 답했다.

“요임금으로부터 도망치는 겁니다.”

설결이 물었다. “무슨 말인가?”

허유가 답했다.

“지금 요임금은 인(仁)을 한다고 애쓰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을 걱정한답니다.

후세는 그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게 될 것입니다.”

 

齧缺遇許由曰

子將奚之

將逃堯

曰奚謂邪

夫堯畜畜然仁

吾恐其爲天下笑

後世其人與人相食與

 

    - 徐无鬼 10

 

경상초(庚桑楚)에 나왔던 내용이 다시 나온다. 후세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장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의 상황을 지금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보는 관점에 따라 좋았다 할 수도 있고, 나빴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세상은 장자 시대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지(人智)가 발달할수록 세상이 점점 험악해져 가리라고 장자가 보는 것은 분명하다.

 

장자 시대 전후를 해서 나타난 유가와 법가를 보자. 유가는 인(仁)과 의(義), 법가는 법(法)이라는 이념을 통해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자가 볼 때 그런 이념은 민초들의 삶을 더욱 질곡으로 빠뜨릴 뿐이다. 유가는 탐욕을 키우고, 법가는 공포심을 키운다. 그럴싸한 명분일수록 사악한 지도자에게는 도리어 국가를 도둑질할 좋은 도구인 것이다. 이런 인위(人爲)는 요임금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장자학파에서는 본다.

 

어제는 고향 초등학교에서 교단을 지키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지금의 학교 체제가 너무 조직적이고 물질적이어서 오히려 비교육적이고 참된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그 예로 몇 년 전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초과근무수당과 방과 후 수당 등을 말했다. 일과 중에 못 한 업무를 늦게까지 남아 하거나 부진아를 지도하는 것은 교사로서 당연하거늘 그걸 돈으로 계산해서 지급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이다. 수당을 주는 데에 반대하는 건 처음 보았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니 그의 논리에도 일리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인간은 돈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게 된다. 덕분에 지갑이 좀 넉넉해질지는 몰라도 돈의 미끼에 걸려드는 꼴이 된다. 교육이란 인간 사랑인데 잘못하다가는 돈 사랑으로 주객전도가 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고 친구는 말했다. 밥 그릇에 코를 박은 채고개를 들 줄 모른다면 비참한 일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체제와 조직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고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곳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세상인지도 모르고 희희낙락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유는 요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홀로 도망쳤다. 태평성대에 내재한 무자비한 발톱이 그의 눈에는 보인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 채 톱니바퀴 역할에만 만족하는 껍데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장자는 말한다. 회의하고 전복하라고, 무비판적으로 학습된 사고의 틀을 깨고 나오라고.

'삶의나침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174]  (0) 2011.07.27
장자[173]  (0) 2011.07.17
장자[171]  (0) 2011.07.03
장자[170]  (0) 2011.06.26
장자[169]  (0) 2011.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