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호퍼(Eric Hoffer, 1902~1983)가 누구인지 그분의 생애가 궁금해서 읽은 책이다. 27개의 짧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자서전이다. 호퍼는 '길 위의 철학자'라는 별명대로 평생을 떠돌이 노동자로 지내면서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독특한 철학을 완성했다. 책상머리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라 사회 밑바닥의 땀과 눈물이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특별한 데가 있다. 그는 제도권에 들어가 학문을 하며 명예를 얻고 안주할 기회가 많았으나 모든 걸 거부하고 '길 위에서' 살았다. 에릭 호퍼는 용기와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큰 봉우리다.
호퍼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일곱 살 때 시력을 잃었다. 그것은 다섯 살 때 어머니와 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사고 때문이었는데, 어머니는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2년 뒤에 돌아가셨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이후 기억마저 잃어버렸다. 언젠가 아버지가 나를 보고 '백치 자식'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이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 서점에서 제목 때문에 우연히 발견한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나중에는 외울 정도로 읽었다고 한다. 다행히 15세 때에 시력은 회복되었는데, 그는 다시 실명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독서에 집착했다. 1920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호퍼는 농장 품삯 일꾼, 사금채취공, 레스토랑 웨이터 보조원 등을 전전하며 1941년까지 떠돌이 생활을 했다. 정규 학교 교육은 받지 못했으니 그는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독학과 광적인 독서로 지식을 채웠다. 그 뒤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두노동자로 25년간 일했다.
에릭 호퍼의 사상에 대해서는 전에 읽은 <인간의 조건>과 이 책뿐이니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글의 분위기는 시니컬한 면도 읽히지만 전체적으로 인간적이고 따스하다. 그리고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는 눈이 날카롭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다. 호퍼는 어떤 생각이든 그걸 표현하는 데는 200자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의 글이 짧은 아포리즘 형식을 취하는 이유다.
호퍼는 무슨 일에서든 성실하면서 인간을 진지하게 대하고 사랑했다. 그는 길 위에서 세상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다. 무엇보다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갔다. 그가 사상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설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삶 자체로 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