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했을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 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 일흔 살의 인터뷰 / 천양희
시를 읽으며 내 일흔 살을 생각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노을의 나이, 먼 것 같은데 가까이 있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는 물음이 은근히 슬프다. 무엇이 되고 싶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고 질문을 받게 되는 나이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물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하게 될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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