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이발로 먹고 사는
깎새 형이 들려준 우스개 한 토막
바야흐로 설 단대목에
오줌 누고 뭐 볼 새도 없이 바쁜데
엊그제 새로 들인
머리나 감기는 시다 녀석 하나가
세상 둘도 없는 뺀질이더라고
그 녀석 그날따라 별나게 더 뺀질거려
보다 못한 깎새 형
버럭 한소리 질렀다는데
- 야 이놈 자식아, 그만 좀 뺀질거리고
얼릉 여 와 손님 대가리나 감겨!
순간, 길게 목 빼고 엎드렸던 그 손님
문제의 대가리 번쩍 치켜들고
한참이나 뻥하게 쳐다보더라고
- 실언 / 고증식
당황했을 깎새 형과 손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시다 녀석은 얼마나 킬킬거렸을 것인가. 악의가 아닌 줄 알기에 실소 뒤에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을 것 같다. 아마 유머 있는 손님이라면 "야, 대가리 좀 잘 감겨봐." 정도의 대꾸는 있지 않았을까. 그런 분위기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이런 실언이 나올 수 있는 이발소 풍경도 이젠 과거의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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