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샌. 2025. 6. 21. 10:41

문화심리학자인 한민 선생이 쓴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하는 책이다. 감어인(鑑於人)이라는 말이 있듯 나를 알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거울에 비춰봐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지만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나라라고 말한다. 이 책은 두 나라의 차이를 역사성이 깃든 문화의 관점에서 재미있게 분석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

 

나도 10년 전 야쿠시마에 갔을 때 일본인들의 친절과 양보에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들은 좁은 산길에서 마주오는 상대를 보면 멀리서부터 비켜서서 기다린다. 먼저 지나가라고 길을 양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소를 띠고 인사까지 건넨다. 길에서 만난 어느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왜 이럴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 종자가 우리와는 다른 걸까?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인의 친절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깍듯하고 예의 바른 '재패니즈 스마일(Japanese Smile)'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무시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일본인들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거나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 같다. 일본인의 친절과 공중예절은 여기서 연유한다. 지은이는 문화적 배경과 함께 어릴 때부터의 엄격한 양육 방식이 회피성 성격을 낳았다고 본다. 일본인에게는 완벽주의와 대인공포증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인은 자기애적 성격이 강하다. 상대방에 대한 의식이 약하고 참견이나 오지랖 같은 적극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情)이라는 말이 많은 것을 덮어준다.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목만 봐도 두 나라의 국민성을 짐작할 수 있다.

 

- 먹방의 나라 한국 / 야동의 나라 일본

- 쌘 언니들의 나라 한국 / 귀여운 소녀들의 나라 일본

- 온라인 게임의 한국 / 콘솔 게임의 일본

- 떼창하는 한국인 / 감상하는 일본인

- 막장의 한국 드라마 / 이세계의 일본 애니

- 욕하는 한국인 / 예의 바른 일본인

- 사람을 믿는 한국인 / 시스템을 믿는 일본인

- 반일의 이유 / 혐한의 이유

- 한국의 국뽕 / 일본의 국뽕

- 오냐오냐 한국 부모 / 칼 같은 일본 부모

 

- 표정이 큰 한국의 탈 / 표정 없는 일본의 탈

- 주체성 자기의 한국인 / 대상적 자기의 일본인

- 한국인의 정 / 일본인의 아마에

- 선을 넘는 한국인 / 선을 긋는 일본인

- 한국의 갑질 / 일본의 이지메

- 자기애성 성격의 한국인 / 회피성 성격의 일본인

- 한국인의 동일시 / 일본인의 환상

- 감정적 한국인 / 이성적 일본인

- 한국인의 화병 / 일본인의 대인공포증

- 산으로 들어가는 자연인 / 방으로 들어가는 히키코모리

 

- 한을 품은 한국 귀신 / 자리를 지키는 일본 귀신

- 삼세판의 씨름 / 단판의 스모

- 영웅이 된 도둑 / 강한 자가 영웅

- '날 넘고 가라' 한국의 스승 / '나만 따라 해라' 일본의 스승

- 미륵의 한국 / 지장의 일본

- 괜찮아요? / 다이죠부?

- 한국인의 부끄러움 / 일본인의 하지

- 분노하는 한국인 / 혐오하는 일본인

- 한국의 어울림 / 일본의 와

- 아버지면 죽이고 보는 한국 /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일본

- 한국의 '알다' / 일본의 '와카루'

 

이젠 우리나라의 위상이 달라졌다.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췄고, K팝이나 드라마 등 문화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GDP도 이미 일본에 역전하여 앞섰다. 얼마 전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 문재인 정권 때 일본이 반도체 보복을 하자 일본에 맞서면 위험하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일본의 무역 제재는 미미했고 도리어 우리의 국산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계기가 되었다. 이젠 일본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대등하게 상대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아마 이런 우리의 성장을 곱게 받아들이지 못할지 모른다. 혐한의 정서에는 그런 게 깔려있지 않나 싶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과 일본은 공생 공영해 나가야 할 관계의 나라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서로 다른 한일의 문화를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다. "쟤들은 왜 저러지?"라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여 줄 이해심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선을 넘는 한국인의 특성이 여기서도 발휘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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