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64]

샌. 2011. 5. 3. 08:18

무후가 물었다. “선생을 뵙고자 한 지 오랩니다.
나는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위해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하니 옳은 일인지요?”
서무귀가 답했다. “아닙니다.
백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백성을 해치는 시초입니다.
의를 위해 전쟁을 종식시키려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근원입니다.
군주께서 이와 같이 한다면 거의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무릇 아름다운 이름을 이루려는 것은
바로 미움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군주께서 인의를 위하여 밀고 나가는 것은
인위에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武侯曰 欲見先生久矣
吾欲愛民
而爲義偃兵可乎
徐无鬼曰 不可
愛民
害民之始也
爲義偃兵
造兵之本也
君自此爲之 則殆不成
凡成美
惡器也
君雖爲仁義
幾且僞哉

- 徐无鬼 2

위나라 무후와 서무귀의 이 대화를 보며 양나라 무제와 달마대사의 문답이 떠올랐다. 양무제는 불심이 깊고 부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한 군왕이었다. “내가 절을 짓고 스님들에게 공양을 많이 했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습니다.”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위무후도 백성을 위해서, 옳은 일을 위해서, 전쟁마저도 불사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서무귀는 답한다. 백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백성을 해치는 시초다. 인의(仁義)를 위하여 일한다면 고작 인위(人爲)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아름다운 이름을 이루려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움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위’(爲)다. 사람들은 다른 무엇을 위해서 산다고 말한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서, 선생은 학생을 위해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애쓰고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한다는 행위가 도리어 상대방을 해치고 고통에 빠뜨리는지는 알지 못한다. 백로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려고까지 한다. 현대의 병폐는 너무 사랑하고 간섭하는 데서 생긴다. 정치인이 국가와 국민을 적당히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도 지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평성대였다는 요순시대에는 임금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있어도 없는 듯 하는 데서 진정한 관계의 평화가 온다.

서무귀는 무후에게 백성을 위하겠다는 마음을 버리라고 말한다. 애민(愛民)이 곧 해민(害民)이다. 서무귀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성대한 열병식과 누관을 없애고 궁중에서 보병과 기병을 없애십시오. 저장함이 없으면 도리어 얻습니다. 남을 이기려는 기교를 없애고 남을 이기려는 모의를 없애고 남을 이기려는 전쟁을 없애야 합니다. 무릇 남의 백성을 죽이고 남의 토지를 겸병하여 내 몸과 내 정신을 보양하려 한다면 그 전쟁은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 반대와 평화주의로서의 장자 학파의 견해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예전에 근무했던 J고등학교 전교조 분회에서 나누어준 소책자에 이런 글이 있었다. 도덕경 17장을 교실 현장의 언어로 옮긴 것이다.

‘슬기로운 교사가 가르칠 때 학생들은 그가 있는 줄을 잘 모른다.
다음 가는 교사는 학생들한테 사랑을 받는 교사다.
다음은 학생들이 무서워하는 교사다.
가장 덜 된 교사는 학생들한테 미움 받는 교사다.

교사가 학생들을 믿지 않으면 학생들도 그를 믿지 않는다.
배움의 싹이 틀 때 그것을 거들어주는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진작부터 알고 있던 바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가 일을 다 마쳤을 때 학생들은 말한다.
“야, 대단하구나! 우리가 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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