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61]

샌. 2011. 4. 5. 14:23

활의 명수 예는 작은 것을 맞히는 데는 기술자였지만

남들로 하여금 자기를 기리지 않게 하는 데는 졸렬했다.

반면 무위자연의 성인은 자연에는 기술자지만

인위에는 졸렬하다.

자연에 기술자이며 사람에게도 선량한 것은

온전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오직 벌레만이 벌레다울 수 있고

벌레만이 자연다울 수 있다.

 

예工乎中微

而拙於使人無己譽

聖人工乎天

而拙乎人

夫工乎天而량乎人者

唯全人能之

唯蟲能蟲

唯蟲能天

 

- 庚桑楚 11

 

'오직 벌레만이 자연다울 수 있다'는 데서 극단적 자연주의자로서의 장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주의는 인간의 개입 없이 일어난 일들이 이성으로 오염된 것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는 인위와 대척을 이루는 반문명주의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4대강 삽질로 깔끔하게 단장된 것보다 뛰어나다. 무식한 농부의 상식은 위대한 철학서보다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쳐준다. 루소는 말했다. "우리의 첫 번째 충동은 언제나 선하다."

 

가장 본능적인 것이 자연의 도(道)에 충실한 것이다. 벌레는 오직 생존의 본능만으로 행동한다. 고등동물로 올라갈수록 삶의 방식은 복잡해지고, 인간에 이르면 온갖 기교로 넘쳐난다. 본성은 묻히고 술수와 테크닉이 활개친다. 활의 명인 예는 날아가는 새도 맞히는 달인이었다. 그러나 겉 솜씨나 재주만 뽐낸다면 자연의 도에는 미숙한 자다. 머리 좋고 뛰어난 사람들이 대개 이런 부류에 속한다. 세상 사람들 또한 대부분 본(本)보다는 말(末)을 쫓는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이유다.

삶의 껍데기를 벗고 근본으로 돌아갈 때 인간도 충분히 인간다울 수 있다. 세상적 굴레와 이념으로부터 해방된 자연인(自然人)이야말로 장자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전인(全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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