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발을 밟았을 때
남이면 경솔함을 사과하고
형이면 좋은 낯빛으로 보고
어버이는 그냥 서 있다.
그러므로 지극한 예는 남이 없고
지극한 의는 사물이 따로 없고
지극한 지혜는 꾀가 없고
지극한 인은 친척이 없고
지극한 신의는 보증금이 없다고 말한다.
전市人之足
則辭以放오
兄則以구
大親則已矣
故曰 至禮有不人
至義不物
至知不謀
至仁無親
至信벽金
- 庚桑楚 9
지진과 쓰나미의 대재앙을 겪고 있는 일본 사람들의 차분한 태도가 화제다. 가족과 전재산을 잃은 비극 가운데서도 우리와 같은 발작적인 통곡과 오열은 보기 어렵다. 아무리 자연재해에 익숙하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인 이상 속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이웃의 고통을 먼저 염려해주는 태도는 일본정신 또는 일본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지하철에서 실수로 상대방의 발을 밟으면 도리어 밟힌 사람이 "미안합니다"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의 발을 잘못 두어 밟게 만들었으니 미안하다는 뜻인가. 그때는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라고 여겼는데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스미마셍'문화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일본 고유의 사무라이 문화,칼의 문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가는 자신의 안전이 염려되기 때문에 무조건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분대로 함부로 말을 내뱉아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자는 말한다. 거리에서 발을 밟았을 때 두 사람이 부자 관계라면 굳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 자식이 실수로 발을 밟았는데 미안합니다, 라는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남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장자에 따르면 예가 강조되는 사회는 예가 부족한 사회다. 지극한 예는 남이 없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일본이 꼭 모범적인 사회만은 아닐지 모른다. 우리나라가 겉으로는 거칠지만 속 정은 더 깊고 따뜻할 수도 있다.
장자는 게젤샤프트에서 다시게마인샤프트로의 복귀를 꿈꾼다.이는 사회 발전의 퇴화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원리에 일치하는 삶으로의 돌아감이다.지금과 같은 체계화되고 조직화된 문명과는 반대점에 있다. 인, 의, 예, 지, 신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공동체, 나라의 지도자가 누군지 몰라도 평화롭게 살아가는 공동체, 지극한 혁명이란 그런 정신의 혁명이 되어야 한다고 장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