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지금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하순에 출국했으니 20일 넘게 걷고 있는 중이다. 카톡으로 보내오는 사연을 보면 하루에 40km 넘게 걷는 날도 있다니 굉장히 강행군을 하는 모양이다. 체력이 좋으니 다른 사람보다 일주일 정도는 빨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할 것 같다.
내가 산티아고를 안 건 10년 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마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 때문에 걷기 열풍이 해외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산티아고는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영적인 순례 여정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지금도 찾는 사람이 이어지고 있다.
퇴직하면 나도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직장을 떠난 지도 어느덧 5년 차가 되었다. 그렇지만 산티아고의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산티아고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이다. 제일 중요한 건 함께 할 파트너다. 혼자 떠날 용기는 없다. 나로서는 언어의 장벽이 제일 큰 문제다.
<지금 여기, 산티아고>는 2013년에 홀로 이 길을 걸은 한 여인의 기록이다. 암 수술을 받고, 이혼을 하고, 사업 실패를 겪으며 삶의 고비를 맞은 저자는 훌쩍 길 위에 섰다. 무너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산티아고 길 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힘을 얻고 새 출발을 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티아고 길은 심각한 사연을 가진 사람만이 찾지는 않는다. 휴가를 내고 가볍게 걷는 사람도 많다. 국적이나 나잇대도 다양하다. 책에는 75세 된 할아버지도 나온다. 길을 걸으면서 자주 만나게 되면 동지 의식이 생기는 모양이다. 산티아고에서도 역시 중요한 건 사람과의 관계다.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지만 위안과 힘을 얻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걸 책을 통해 배운다.
만약 내가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면 지은이와는 다른 경험을 할 것 같다. 나는 고독한 걷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외국인과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오히려 바라는 바다. 산티아고라면 나는 우선 침묵 걷기가 떠오른다. 철저히 자연과 나 자신과만 대면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책에 보면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물론 그것도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7년 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는 아예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는 지역으로 들어갔다. 완벽하게 외부 세계와 차단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얼마만한 해방감을 만끽했는지 모른다. 나는 산티아고에서도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
책 제목에 나오는 '지금 여기'는 이곳 삶이 산티아고와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산티아고에서의 깨달음이 일상의 에너지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게 산티아고에 가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걸으면서 자신을 보는 일, 세상의 모든 길은 인생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