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대략 의미만 파악하기 위해 훑어보는 데만도 닷새가 걸렸다. 굳이 정독할 필요까지는 없다. 책의 많은 부분이 다양한 통계와 그래프로 되어 있다. 전체의 요지만 이해하면 족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인류와 역사에 대한 희망적인 보고서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내면에는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고 있다. 초기의 야만과 폭력의 세계로부터 인류는 점차 개명되어 천사의 힘이 악마를 누르는 데까지 발전했다. 전 세계적인 폭력과 전쟁의 감소 현상을 통계로 보여주면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아름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루소를 비롯한 자연주의자의 관점이 대표적이다. 문명이 등장하기 전의 인류는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상상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오히려 반대다. 옛날의 인간은 힘이 지배하는 유혈 사태 속에서 신음했다. 폭력과 복수, 고문, 살해, 인신제물 등이 횡행했다. 책에서 예로 드는 인간의 잔학 행위는 실로 끔찍하다. 현대인에게는 분명 낯선 나라다.
20세기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특히 1970년 이후로는 대규모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여러 가지 폭력에 대한 통계도 대부분이 하향 곡선을 그린다. 우리 시대도 테러 등 불안 요소가 상존한다.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작은 물결에 불과하다.
이렇게 폭력이 줄어든 데는 역사를 통한 평화화 과정, 문명화 과정, 인도주의 혁명이 있었다. 인류의 의식이 진보한 것이다. 지은이인 스티븐 핑커는 우리 안에 있는 선한 천사로 네 가지를 든다. 첫째가 감정이입이다. 타인에 대해 느끼는 연민과 공감 능력이 우리를 폭력에서 멀어지게 한다. 둘째는 자기 통제 능력이다. 셋째는 도덕 감각, 넷째는 이성의 힘이다. 포식, 복수, 가학성, 이데올로기 등을 극복하는 우리 내면의 능력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근대성을 바라보는 문제를 제기한다. 근대성이란 과학, 기술, 이성이 인간의 삶을 바꾸고 그와 더불어 관습, 신앙, 공동체, 전통적 권위, 자연과의 합일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오늘날 사회 비평에서는 근대성에 대한 혐오가 중심적인 요소다. 많은 사람들이 낙원에서의 추락을 한탄하며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를 바란다. 현대의 낭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건 현대에 폭력이 넘친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라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보다 살해 위험이 30배나 더 높은 세상에서 살았다. 일곱 살 소녀는 속치마를 훔쳤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했고, 죄수의 가족은 족쇄를 느슨하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냈고, 마녀는 톱으로 몸이 반으로 갈렸고, 선원은 곤죽이 되도록 채찍질을 당했다. 인권이라는 말조차 없던 시대였다. 평화로웠던 과거에 대한 향수는 망상 중의 망상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인간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였다. 과거를 돌아보면 인간의 잔악함과 무익함에 누구나 충격을 받는다. 동시에 분노와 혐오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인류는 폭력으로 희생되는 수를 줄이며 많은 이가 평화롭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시련이나 문제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감소는 분명 우리가 음미해야 할 업적이다.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든 문명과 계몽의 힘을 우리는 마땅히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