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재미있어 읽어 본 책이다. 지은이인 주대환 씨는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민노당원으로 정치 일선에도 나선 분이다. 그는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무너지지 않는 용기와 희망을 <논어>에서 찾았다고 고백한다.
책은 독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전해지는 메시지가 다르다. 특히 고전은 더 그렇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저자의 의도도 중요하겠지만 각 개인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고전으로 남을 수 없다. 고식적인 자구 해석에서 탈피해야 고전을 읽는 맛이 살아난다.
그런 점에서 <좌파논어>도 신선한 시각에서 <논어>를 읽은 결과물이다. 지은이가 <논어>를 읽는 키워드는 '연대'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자당을 만들었다. '군자'도 공자당원이 되기 위한 자격 기준으로 읽는다. 동지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군자다. '효'도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한 훈련이 된다. 이 연대의 정신으로 무너지는 대한민국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지은이는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준다. 지인이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친구들과 놀다가 야식을 사 먹으려고 했더니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아서, "서울에는 24시간 문을 열어놓는 편의점, 식당, 술집이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부러워하기는커녕 "그 가게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이겠느냐"고 말해서 놀랐다. 내 돈 내고 사 먹으면 그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심코 말한다. "돈만 있으면 한국만큼 좋은 나라가 없다." 스웨덴 사람들은 같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책에서 공자를 자연철학자로서 묘사하는 내용도 흥미롭다. 또, 남자(南子)를 공자 사상을 가장 깊이 공감한 정치가로 해석한 것도 색다르다. 남자는 <논어>에서 드물게 등장하는 여성이다. 음란하다는 등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남성 중심 사회의 편견으로 본다. 공자는 똑똑한 여성인 남자에 매료되었고, 서로 깊은 사상적 정서적 교감을 나누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예상한다.
주장의 진위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논어>는 누구든 자유롭게 읽을 권리가 있다. 위험한 것은 정형화된 해석이다. 그 폐해는 조선을 통해 충분히 본다. 자신의 위치에서 <논어> 읽기가 소중하다. <좌파논어> 같은 책이 가진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