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행복의 기원

샌. 2016. 6. 12. 10:03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가 진화론의 관점에서 행복의 정체를 밝힌 책이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반대로 살기 위해서 행복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는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행복감도 그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책 <행복의 기원>은 행복에 덧씌워진 관념을 냉철하게 발가벗긴다. 행복은 '비움', '느림', '감사'라는 공허한 지침에 반기를 든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왜' 행복을 느끼는가를 묻는 책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이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다. 하늘 높은 데 있는 행복을 발 아래로 끌어내렸다고 할 수 있다.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헛된 이상주의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행복에 대해서 과학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징,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주목한 부분이 외향성과 행복이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행복의 결론은 유전이다. 즉, 외향성을 타고나야 한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라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과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싫어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더해서 소심하기까지 하다. 나는 불행하게 살 팔자를 타고난 것일까? 나를 관찰할 때 그렇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 나름의 자족과 행복이 있다. 타고난 자신의 체질과 환경이 맞으면 플러스 작용을 한다고 본다. 변명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행복을 고상한 정신적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내가 그렇다. 그러나 행복의 중심에는 쾌락적 즐거움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가치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을 혼동하지 말자. 가치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은 같지 않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면 내가 지금 좋고 즐거운 것보다 남들 눈에 사려 깊고 의미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이렇게 되면 행복은 역풍을 맞고 쾌락의 즐거움을 놓치게 된다. 행복해지려면 삶에서 쾌락적 부분을 과감히 수용하라.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라는 말이 있다.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작은 기쁨이 소중하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일이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행복은 절대 한 방으로 해결될 수 없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에서 행복도가 낮은 이유를 집단주의 문화에서 찾는다. 각국의 행복지수를 조사하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소득 수준이 높은 아시아 국가는 낮게 나온다. 행복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척도는 개인주의다. 전통적으로 아시아는 집단주의 문화권이다. 경쟁과 과도한 타인 의식, 물질주의, 자유감 부족이 우리의 행복 성취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행복의 기원>은 진화론이라는 렌즈로 행복을 들여다본 책이다. 배운 바가 많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엘리트적인 행복론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행복은 쾌감과 다를 바 없는 감정이다.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책의 마지막에는 남녀가 음식을 앞에 놓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와인을 마시는 사진이 있다. 지은이는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고 말한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은 이런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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