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이 타계한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서 무척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과학자들 중에서 세이건만큼 대중들의 환호를 받았던 사람도 없었다. 그의 저서 <코스모스>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판매된 과학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TV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과학 다큐멘터리가 공전의 인기를 누린 건 처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의 신비를 접하고 꿈을 키웠다. 이 모든 것이 칼 세이건 개인의 능력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만큼 다방면에서 자질이 뛰어난 과학자였다.
나도 <코스모스>를 비롯해 <혜성> <창백한 푸른 점>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에덴의 용> <콘택트> 등 여러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코스모스>의 임펙트가 워낙 강해 뒤에 나온 책들이 시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솜씨에 항상 감탄했다. 특히 <콘택트>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우주여행을 다녀오는 발상이 참으로 기발했다. 영화는 두 번이나 보았다.
<에필로그>는 칼 세이건이 마지막으로 써서 우리에게 남긴 책이다. 우주보다는 지구와 환경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인류의 생존에 대해 우려를 하는 세이건의 마음이 읽힌다. 그러나 세이건은 낙관주의자다. 인류가 지혜를 모으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연은 인간과는 무관한 목적으로 여기에 존재한다. 인간을 위한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의 권리로서 우리의 존경과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서양 과학과 서양 종교는 심하게 변질되어, 자연을 신성하게 보는 것을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이를 대신해 힌두교-불교-자이나교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통에서 우리의 미래를 발견해야 한다. 세이건은 무신론자지만 과학과 종교가 함께 지구 환경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칼 세이건은 1996년에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생의 골수를 수차례 이식받는 힘든 투병 과정이 '4부 에필로그'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원제목은 <Billions & Billions>다. 아마 본인도 그렇게 빨리 세상을 뜰 줄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주와 인간에 대해 그가 그린 그림은 여전히 우리를 황홀하게 한다. <에필로그>는 다재다능했던 세이건을 아련히 추억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