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이런 노년도 가능하다

샌. 2017. 8. 6. 11:49

며칠 전 신문에 '일본의 100세 할머니 베스트셀러 저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요사이 일본에서는 100세를 전후한 할머니들이 낸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보도였다.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런 책을 가리켜 '100세 전후'라는 뜻의 영어 'Around Hundred'를 줄여 '아라한' 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출간된 <90세, 뭐가 경사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93세의 할머니 작가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풀어내 인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1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그 외에도 많다. 지난해 9월 출판된 100세의 다카하시 사치에가 쓴 <100세 정신과 의사가 발견한 마음의 안배>는 26만 부가 팔렸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대단한 말이 쓰여있지는 않지만 연륜의 무게로 공감을 얻는다고 한다. 2010년에 나온 여류 시인 시바타 도요(당시 98세)의 <약해지지 마>는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다. 89세의 아마추어 사진가 니시모토 기미코의 <혼자가 아니예요>, 94세의 할머니 패션모델 도코미 에미코의 <할머니는 패션모델>도 있다.

 

2012년에 나온 와타나베 가즈코(90) 수녀의 에세이집 <놓인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는 230만 부가 팔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시노다 도코(104)의 <103세가 돼 알게 된 것>, 사사모토 쓰네코(102)의 <호기심인 걸, 지금 101세>도 인기를 모았다. 올해 들어서도 소에다 기요미의 <고야산에 살아서 97세, 지금 자신에게 감사한다>, 요시자와 히사코의 <99세로부터 당신에게, 언제까지 변하지 않는 중요한 것> 등의 출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책의 독자들은 주로 60~80대의 여성이라고 한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80세도 저자로선 아직 젊고, 70대는 너무 젊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의 추세를 대체로 따라간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도 고령의 저자들이 내는 책이 인기를 끄는 때가 언젠가는 올 거라고 본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할머니만 있고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젊었을 때 너무 에너지를 탕진해서 그런가, 노년이 될수록 남녀의 성차가 분명히 드러난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면에서 여자들이 훨씬 우월하다. 남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100세가 되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면 더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총기가 받쳐준다는 뜻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사람만 선택되는 건 아니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90세가 넘어서 아들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마련해둔 자신의 장례 비용으로 시집을 냈다. 할머니는 "장수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말한다.

 

이분들 앞에서는 나이 핑계가 부끄러워진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데는 나이는 아무 관계가 없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일본의 할머니 작가처럼 대중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 못해도 상관없다. 스스로 만족하며 최선을 다한 인생이면 행복하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자문하는 일이 잦다. 책과 가까이 하고, 조용히 사색하며, 평화로운 여생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인생 말년은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기에 다가올 시간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특별한 일본의 할머니들을 보면서 조금은 분발하려는 욕심도 생긴다. 그중의 하나가 나무와 좀 더 깊이 만나는 것이다.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조심스레 한 발을 떼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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