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혼자 집안에서 숨어 지내는 남자가 있다. 가족이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굳게 닫힌 창문에는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해 놓았다. 급기야 119에 신고해서 집안에 들어가 보니 생수, 라면이 몇 무더기나 쌓여 있다. 베란다에는 망원경도 있다. 농성장의 모습 그대로다. 이 남자는 2009년 쌍용 사태 때 농성 투쟁을 하다가 해고된 사람이다. 혼자서 아파트에 숨어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다. 옛 동료들과도 만나려 하지 않는다. 정신적 외상이 심각한 경우다.
지난 달 26일에는 역시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임모씨가 평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한지 10개월 만이다. 고3 아들과 중3 딸, 두 아이만 남았다. 지난 1일에는 조모씨도 취업난과 생활고를 못 이겨 자살했다. 쌍용차 사태 이후 벌써 14번 째 희생자다. 해고된 직원과 그 가족이 받는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다. 역지사지로 내가 그 처지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암담하다. 정부와 회사측의 방치 속에서 해고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2009년 1월에 쌍용자동차는 경영난을 이유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총인원의 36%에 해당되는 2600여명의 인력감축계획을 발표했다. 6월에는 정리해고 대상자 1056명을 통보한다. 노동자들은 77일간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다. 강과 강이 맞부딪혔다.경찰의 강제진압이 이어지고 8월에 노사간에 타협이 이루어진다. 결과는 2200여 명이 퇴직금과 위로금을 받고 회사를 떠났고, 468명은 1년 뒤 경영이 호전되면 복직한다는 조건으로 무급휴직자가 됐다. 그러나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도 해고자들은 여전히 복직이 안 되고 있다. 숨진 사람들은 대부분 복직을 기다리는 무급휴직자들이다. 공식적으로는 쌍용차 직원이어서 다른 업체에 취업도 안 된다. 그들이 정부와 회사로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의 갈등도 심각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떠난 사람들은 대기업 사원에서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상실감과 박탈감이 얼마나 클 것인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재기에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가정이 파괴된 경우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쌍용자동차는 이제 법정관리를 끝내고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따랐다. 대화와 타협이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쌍용의 비극을 보면서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이 더욱 절감된다. 용산 참사나 쌍용 사태는 우리가 얼마나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평생을 다니고 있는 직장이라도 해고되면 날개 없는 추락밖에 남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직장이 있어도 불안하다. 이러니 돈 밖에는 믿을 게 없다고 한다. 내 먹고살기도 힘들다며 남의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연예인의 죽음은 대서특필되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생기는 타살은 외면한다. 경제 발전과 잘 사는 타령만 하다가 대한민국은 속으로 썩어가고 있다.
아래 글은 얼마 전에 읽었던 신문 칼럼의 한 부분이다. 제목이 ‘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였다.
‘일자리 못 찾고 실직하고 벌이가 적고 병들고 월세, 학원비 밀린 이들은 다리 위에서 집에서 차 안에서 공원에서 죽는다. 만일 가장이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면 그의 가족도 살아남기 어렵다. 국가는 경쟁력 강화하고 선진화하느라 겨를이 없고, 사회는 이미 정글로 변해 아무도 남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가족 살해다. 사회가 낙오자로 찍기만 하면 찍힌 이가 알아서 나머지 쓸모없는 가족을 사회로부터 제거한다. 이건 연쇄살인, 아니 청부살인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너무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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