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을을 꿈꾼다. 뒷산은 그렇게 높진 않지만 위엄이 있고, 개울이 흘러 저 멀리 강이 보이는, 서남향이라 햇볕이 오래 오래 머무는, 감나무에는 홍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온갖 새의 먹잇감이 되어주는 그런 마을. 사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여울목에는 구름 한 자락 떠 있는, 동네 가운데쯤 디딜방아가 다소곳한, 키 큰 시누대가 휘파람을 부는 그런 동네를 그려본다. 처마 낮은 집집마다, 그 주인 닮은 개들이 꼬리만 흔들 뿐, 짖지 않는 동네, 견성한 개들이 탁발 나온 스님들과 막걸리 잔을 돌리는 주막이 있는 동구 밖, 두 사람 이상만 모여도 서로의 눈망울 속에서 산새 소리, 바람 소리, 개울물 소리를 읽을 수 있는 동네. 따스한 햇볕을 닮아, 뜨내기가 마당에 어슬렁대도 누구 하나 큰소리치지 않는 수더분한 동네. 소리칠 줄 알지만, 문고리를 안으로 잡아당겨, 자기 목소리를 안으로 쇳대 채워,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짖을 줄 아는 그런 동네, 그런 주인, 그런 나라에서 산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그렁그렁해질 것이다. 말랑말랑해질 것이다.
- 유용주 님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