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걷기의 의미

샌. 2011. 2. 1. 13:12

발을 다쳤다. 추운 날 시멘트길을 다섯 시간 가까이 걸었는데다리에 무리가 된 모양이다. 오른발을 디디면 통증이 온다. 열흘 가까이 긴 외출은 삼가고 있다. 마음대로 걷질 못해 답답하긴 하지만 하릴없이 집에서 쉬는 것도 괜찮다. 마침 지난주 경향신문에 박홍규 선생의 칼럼이 실렸다. 자신만 보고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는 내 근시안적 걷기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었다.

이제 길도 상품이 되었다. 올레길, 둘레길 같은 상품명도 있고, 고객을 끌려는 광고도 한다. 사람들은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 걸으러 간다. 이름난 길은 도시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서점에 가면 걷기에 관한 안내서적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전국이 걷기 열풍이다.

강을 살린다고 강을 파헤치고, 도로를 만든다고 산을 깎아낸다. 심지어는 강변의 초지를 없애고 시멘트로 발라 자전거길을 만든다. 제 땅은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멀리 걸으러 간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도 한때 산티아고길을 꿈꾸었다. 그러나 스페인까지 날아가서 길을 걸으며 영적 각성을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선생의 지적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옛길이 복원되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른 소비적인 것으로 여가를 즐기기보다는 걷기가 바람직하고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농촌 사람이 볼 때는 걸으러 내려오는 도시인이 무척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슈퍼마켓이나 헬스클럽에 갈 때도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수 백 km 떨어진 곳을 걷기 위해 찾아가는 모습이 이해가 되겠는가. 도시에서의 내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걷기란도시인의 새로운 소비 트랜드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때 걷기는 단지 오락이며 여흥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박 선생은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해주고 있다. 아래에 선생의 글을 옮긴다.

< 그냥 내 동네 흙길을 걷게만 하라> 박홍규


걷기가 국가적으로 유행한다. 아무리 세상에서 유행이 가장 급속하고 획일적인 나라라고 해도 그렇지, 입는 것만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 타는 것, 사는 집까지 유행해 정말 놀라운데, 이제는 걷기까지 유행하고 상품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걷기 유행은 입고 먹고 타고 사는 것과 다르게 자신의 일상과 무관한 특별한 취미로, 자기가 사는 곳과 전혀 다른 먼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황당하다.


옷이야 자신을 가리고, 먹거리나 음료도 자신이 먹고 마시며, 차도 자신이 굴리고, 집도 자신이 사는 것인데, 걷기만은 자신이 사는 제 동네에서는 차가 인도까지 잡아먹어 도저히 걸을 수 없어서 차나 배나 비행기를 타고 멀리멀리 나가, 호텔까지 잡아놓고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산티아고 가는 길이니 히말라야 트레킹이니 일본 온천길이니 하는 곳을 찾아 걸어 다닌다고 야단법석이다.


게다가 각종 나라 사람들이 쓴 걷기에 대한 온갖 부류의 책들까지 유행하고 있으니 그 점에서만은 대단한 독서의 나라, 철학의 나라, 교양의 나라다. 도시는 물론 시골에 사는 사람들까지, 아니 시골에 사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자신이 걸어다닐 수 있는 제 동네의 길을 잃었는데,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탓인지 자본은 이제 제 기능을 잃은 우리의 다리조차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걷기 유행 상품을 생태니 환경이니 자연이니 건강이니 하며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언론이나 지식층의 행태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더욱 놀랍다. 이는 그들이 과거에 일반 식품보다 몇 배나 비싸게 팔린 유기농 무공해 식품이니 하는 것을 독점 애호한 먹거리 유행의 주역이고, 침술이니 자연약품이니 기(氣)치료니 하는 각종 의료에 탐닉한 건강 유행 등의 중심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래도 골프니 헬스니 하는 것을 경멸하는 정도의 수준을 갖춘 자들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스포츠 아닌 스포츠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설픈 생태주의자이거나 사이비 자연주의자인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기는 어차피 진실도, 중요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자신이 걷는 길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있어야 하고,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데 필요한 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전거를 타는 길도 마찬가지다. 이 길은 대단하지도, 값비쌀 필요도, 거대할 필요도 없이 한 사람이 걸을 수 있고,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폭이면 족하다. 포장이 필요하기는커녕 도리어 흙길 그대로, 잡초가 피는 대로이면 더욱 더 좋다. 세상에서 가장 어설프면서도 남발되는 벽돌 놓기도 필요 없다. 내가 사는 동네에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이 없어, 바다 건너 섬에, 산맥 너머 타향에, 대륙 건너 외국에 내가 걸을 길을 찾아 헤맨다니 이 무슨 딱한 노릇인가? 식구를 모두 외국에 보낸 기러기라서 그런가?


누구는 바다 건너 섬이나 산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그곳을 걷는다고 한다. 그러나 365일 대부분을 내가 사는 마을이나 동네가 아름답지 않은데, 1년에 겨우 3~4일 걷는 섬이나 산이 아름다운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평생 사는 마을이, 시골이, 도시가, 거리가 아름답지 않다면 아름다움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내가,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내 동포가 아름답지 않고 TV 상자 속의 외국인이 아름답다고 해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내가 매일 보는 동네가 추악한 원색 광고판으로 가득한데 평생에 한 번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 기적같이 영성을 준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차가 전혀 다니지 않는 수만 개 골목 사이 흙집에서 수십만 명이 살고 있는 천년 고도 페스나 베니스, 같은 무렵에 세워진 신라의 경주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아름다운 것은 천년 이상 걷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여러 시골은 물론 도시에도 아직 그렇게 인간을 위한 길이 있다. 그런 인간의 길이 없고, 인간의 걸음까지 유행 상품으로 타락시키는 비인간의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인간답게 내 동네를 걷게 하라. 단 한 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아도 좋다. 포장이 아니라 흙길이어야 하니 돈 들 일도 없다. 그냥 인간으로서 내 동네 흙길을 걷게만 하라. 그 밖에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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