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무위

샌. 2011. 1. 25. 14:15

얼마 전에 TV에서 노년 생활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거기서 한 강사가 노년에 제일 경계할 것으로 무위(無爲)를 들었다. 아마 이분은 무위를 할 일이 없는 상태로 해석한 것 같다. 보통 사람이라면 노인이 되었을 때 일 없이 빈둥거리게 되는 걸 제일 두려워한다. 그것이 무위라면 강사의 말도 맞다. 하긴 무위도식(無爲徒食)이라는 부정적 말도 있으니무위를 좋게 보긴 어렵다.

그런데 무위(無爲)란 원래 노장철학의 중심 개념이다. 특히 노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여기서 무위는 유위(有爲)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인위적이지 않은 행위를 말한다. 무위란 무심하게 함, 무욕으로 함, 또는 이기적 욕망에 근거하지 않는 행위다. 그러므로 무위는 가장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범주에 속하는 행위다. '나'를 비움으로써만 거기에 이를 수 있다.

도덕경에 보면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란 구절이 나온다. '학문을 하면 날로 보태는 것이고, 도를 함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덜어서 무위에 이르면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위는 인간 정신이 닿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공자는 나이 70을 종심소욕불유거(從心所欲不踰距)라 했다. 마음 내키는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은 '나'를 초월했다는 의미에서 노자의 무위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또한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있다. 내가 했지만 내가 했다는 의식이 없는 행위다. 이 역시 무위와 닮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무위는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취해야 할 정신적 수양의 경지다. 인간 완성의 정점에 무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개는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느냐의 여부에 신경을 쓰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이다. 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 근본이라는 말이다. 단지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의 연장선상에서 관성에 의해 일을 찾는다면 그건 평생 일의 노예로 묶이는 짓에 다름 아니다. 일이 '나'를 드러내고 강화해주는 역할만 한다면 더욱 그렇다. '함 없이 함'이라는 무위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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